조석래 회장 비자금 의혹·하이닉스 논란 등 잇단 악재
“회장직 수행 힘들어” 걱정…“처신 신중했어야” 지적
“회장직 수행 힘들어” 걱정…“처신 신중했어야” 지적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요즘 분위기는 영하의 기습 한파가 지나갔는데도 여전히 썰렁하다. 회장을 맡고 있는 조석래 효성 회장이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축소수사 논란, 아들들의 국외 부동산 매입, 하이닉스 입찰 참여 논란 등 잇단 악재에 시달리면서, ‘재계 대표’를 자처해온 전경련도 이미지 실추는 물론 재계 구심점으로서 역할에 비상이 걸렸다.
전경련은 이들 사건이 효성그룹의 문제라며 함구한다. 매주 한 번씩 전경련을 찾는 조 회장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한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반기업정서를 심화시키는 등 부작용이 큰데,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며 “과거에도 회장단과 관련해 불미스런 일이 일어났을 때 전경련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현 상태가 장기화하면 재계 리더인 전경련 회장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걱정까지 나온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조 회장도 재계 안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다 듣고 있을 것”이라고 곤혹스러워했다. 전경련 회장의 임기 중 퇴진은 49년 역사에 두 차례 있었다. 김우중 대우 회장이 1998년 10월 대우그룹 부도사태로 1년 만에 물러났고, 손길승 에스케이 회장은 2003년 10월 에스케이 분식회계 사태로 8개월 만에 그만뒀다.
효성과 전경련에서는 조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점 때문에 억울하게 당한다는 하소연도 있다. 전경련 임원은 “웬만한 재벌 중에서 해외에 집 한채 없는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며 “대통령 사돈이라고 무조건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게 문제”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조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면서 동시에 대통령 사돈임을 고려해 좀더 신중한 처신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대 그룹의 임원은 “조 회장이 그동안 정부의 투자확대 요청에 대해 경제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을 내세워 거절했다. 그런데 해외 부동산 매입건 때문에 기업에 투자할 돈은 없지만, 해외에 투기할 돈은 있느냐는 지적을 듣게 됐다”고 혀를 찼다.
효성이 덩치가 세 배나 큰 하이닉스 인수를 시도한 것도 과욕이라는 말이 많다. 전경련 회장사의 경우 재계 화합을 위해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고 특혜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온 전통에 좀더 신경을 써야 했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회장이자 대통령 사돈이었던 최종현 에스케이 회장이 1992~1994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잇따라 포기한 전례와 비교되기도 한다. 대다수 재벌들은 부침이 심한 정치인과의 관계는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둔다. 하지만 조 회장은 스스로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보를 거듭하다 화를 자초했다는 평을 듣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일 때 “차기 대통령은 경제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사돈 지지 발언을 한 게 대표적이다.
조 회장의 ‘입과 발’이 묶이자, 전경련도 무기력증에 빠진 모습이다. 최대 현안인 복수노조,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도 재계의 단일 의견을 못 내놓고 있다. 그룹 간 이견이 클 때는 회장단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럴 여건이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해 전경련 전제경 홍보실장은 “효성문제와 관계없이 한미재계회의와 국무총리가 참석예정인 오는 17일의 회장단회의 준비 등 계획된 일들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면서 “현안인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 문제 등 노사문화 선진화 과제들도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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