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해 들어 유난히 공무원 부패 사건이 많이 터지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연차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국가 청렴도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는 하나 아시아에서도 일본, 홍콩, 싱가포르에 뒤처져 있고,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하위권이다. 검찰이 공무원 비리에 대해 일제 수사에 나서겠다는 보도가 얼마 전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검찰총장이 기자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추첨 방식으로 촌지를 돌린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이런 의식을 가진 검찰이 제대로 부패를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2004년에 논의하던 공직부패수사처 도입을 진지하게 다시 논의해야 하는 게 아닌가. 뇌물수수를 가리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파트타임 직업”이라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부패는 끈질기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영국의 새뮤얼 피프스(Samuel Pepys, 1633~1703)는 미천한 집안 출생이었으나 해군부 관리로 들어가 나중에는 장관이 되었다. 피프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려 125만 단어에 달하는 일기인데, 영국에서 <성경>에 버금가는 장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그는 일기에서 매일의 생활을 자세히 기록해두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자기가 받은 뇌물 액수와 전후 상황까지 적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수시로 자기 재산을 조사해본 뒤 “지금 나는 951파운드의 재산을 갖고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쓰고 있다. 피프스는 끊임없이 현금과 선물을 받아 챙기고, 그 보답으로 무언가 도와줄 길을 모색하면서도,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각종 부패 사건 연루자들과 공통점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의 고위 공직자, 정치인치고 이런 기록을 남겨 그나마 후세를 위한 경종을 울린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세계에 부패가 없는 나라는 없지만 그래도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일수록 부패가 적은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정부가 혐오하고 탄압하는 공무원 노조가 부패 방지에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므로 결코 그렇게 원수 대하듯 해서는 안 된다. 시장경제의 발전 역시 부패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정부가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민간에 특혜를 나누어주면 인허가를 따내기 위한 로비가 치열해지고, 거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뇌물수수로 연결된다. 관치경제 아래에서 이른바 이권추구형 사회(rent-seeking society)가 형성되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통적으로 남미에서 부패가 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도 부패 척결을 위해서는 뿌리 깊은 관치경제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요즘 부쩍 법치를 강조하는데, 법치의 기본은 공직자의 솔선수범과 부패 척결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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