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재법원서 IPIC에 승소…시세보다 싸게 지분매입 가능
현대중공업이 중동 자본에 넘어갔던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10년 만에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현대중공업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13일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재판소로부터 현대오일뱅크 지분 70%를 보유한 아이피아이시(IPIC·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 쪽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 지분 19.8%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국제중재재판소는 “아이피아이시 쪽이 2003년 현대 쪽과 맺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보유 주식 전량을 시장가격보다 싸게 현대 쪽에 팔라”고 판결했다.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은 단심제이며, 국내 법원에 별도소송을 내더라도 이를 뒤집은 전례가 거의 없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양쪽은 2년 가까이 법적 분쟁을 벌여왔다. 아이피아이시는 1999년 자금난에 빠진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50%를 5억1000만달러에 사들인 뒤,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율을 70%로 높였다. 2002년엔 금융지원을 해준 보상 차원에서 2억달러까지 배당을 독점해 받을 권리도 현대 쪽으로부터 보장받았다. 현대중공업은 2억달러가 채워질 때까지 배당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경영권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2007년 아이피아이시가 매각주간사를 통해 지분을 제3자한테 팔려고 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은 “주식 우선인수권을 주기로 했던 주주 간 계약을 위반하고, 고의로 배당을 안 받아가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참여를 막았다”며 아이피아이시를 상대로 국제중재재판소에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로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 지분 가운데 30% 이상만 매입하면 경영권을 되찾게 된다. 두 회사가 2003년 맺은 계약서에는 ‘계약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되면 상대방에게 보유지분 전량을 시장가격보다 싸게 넘겨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담겨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 지분 70%를 시장가격의 75%에 사들인다고 할 때, 필요한 자금은 1조5000억~2조원가량이다. 현대중공업은 승소할 때를 대비해 대규모 자금 차입을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경질유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의 나머지 지분은 현대자동차(4.35%), 현대제철(2.21%), 현대산업개발(1.35%) 등 범현대가 기업들이 나눠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한 데 이어 현대오일뱅크 경영권까지 되찾으면서, 사업 다각화에 탄력을 받게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16일 공시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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