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지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는 한국의 경제사회적 발전 수준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과 비교한 흥미 있는 연구를 발표했다. 한국의 성적이 제일 좋은 분야는 과학기술 경쟁력으로서 4위에 올라 무척 자랑스럽다. 그러나 제일 나쁜 분야는 30위로 꼴찌를 차지한 복지·분배다. 분배가 불평등하기로 악명 높은 멕시코와, 국민소득이 우리 절반밖에 안 되는 터키보다 우리가 뒤처진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같은 날 도하 신문은 한국의 출산율이 1.22명으로 세계에서 끝에서 2등이라는 유엔인구기금 보고서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인구는 지금 4800만명인데 현재의 저출산 추세가 계속되면 40년 뒤에는 400만명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머나먼 미래를 예측한 다른 추계에 의하면 지금부터 300년 뒤에는 한반도에 사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스런 시나리오도 있다. 복지·분배 꼴찌와 출산율 꼴찌는 별개의 사실이 아니다. 복지·분배가 꼴찌이니 출산율도 꼴찌가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난주 같은 날 홍헌호 박사가 발표한 연구를 보면 한국의 가족정책 예산이 국민소득 대비 0.3%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7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가족수당, 육아휴직 급여, 보육서비스, 자녀 교육 지원 등 예산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아이 낳아서 키우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병원, 보육시설, 학교, 어디를 가도 국가에서 제대로 도와주지 않으니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그러니 아이 키우는 비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많이 드는 것이다. 그 결과가 애 안 낳기다. 부모들이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출산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저출산은 무엇을 의미하나? 머지않아 노동력이 부족하고, 따라서 경제성장이 떨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저출산 현상과 고령화 현상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역시 세계 최고 속도로 진행중인데, 그 주요 원인은 저출산이다. 물론 저출산, 고령화는 많은 나라의 공통 현상이긴 하지만 그 속도에서 우리만큼 빠른 나라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의 경제성장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서도 출산율을 대폭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젊은 부부들이 출산파업을 끝낼 수 있도록 보육, 교육, 복지에 대폭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복지, 분배를 무시하고 오직 성장지상주의에 매진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복지, 분배를 무시하고는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보수파가 애창하는 “복지·분배가 성장의 발목 잡는다”는 노래는 이제 그만 불러야 한다. 새는 두 날개로 날고, 사람도 두 다리로 걷듯이 성장과 복지·분배는 같이 가는 것이다. 저출산은 우리가 40년간 매달려온 성장지상주의의 저주다.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시한폭탄이 벌써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복지, 분배에 눈을 돌리자. 너무 늦어 후회하기 전에.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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