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1996년의 노동법 개정으로 복수 노조가 허용됐고, 노조 전임자에 대한 회사의 임금지급이 금지됐다. 그러나 두 조항은 법의 시행이 세 차례나 유예되어 법개정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효력이 없다. 그런데 유예의 시한이 올해 말로 다가옴에 따라 이달 안으로 법 개정이 없는 한 내년 1월1일부터는 복수 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시행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놓고 노사가 오래 줄다리기를 거듭하더니 드디어 이달 초 노총, 경총, 노동부가 합의에 도달했는데, 그 내용은 복수 노조 허용을 다시 2년 반 유예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6개월 유예한 뒤에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이 합의에 강력 항의하면서 경총 탈퇴를 선언했다. 이제 뜨거운 감자는 국회로 넘어갔고,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복수 노조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것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자의 단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93년 이후 13차례나 한국 정부에 대해서 복수 노조를 허용할 것을 요구해왔다. 재계와 정부는 복수 노조 허용 시 교섭창구가 늘어나 교섭비용이 증가할까봐 걱정한다. 그 문제는 노조원 전체의 투표로 어느 한 노조에 대표권을 모아주든가, 아니면 여러 노조가 적당한 비율로 대표권을 갖고 동시에 교섭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어느 방식을 취할 것인지는 노조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나라에 따라 관행이 다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조 전임자 임금은 사용자 측에서 지급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조합비로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는 사용자 측이 이런저런 형태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어쨌든 전임자 임금지급 여부는 노사 자율에 의해 결정하고 있으며, 이를 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그러므로 전임자 임금지급을 법으로 금지한 1996년 개정 자체가 잘못이며, 국제노동기구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해 이 조항을 폐지할 것을 여러 번 요구해왔다. 이상 논의에서 볼 때 두 문제의 정답은 아주 명백하다. 복수 노조는 하루빨리 허용해야 하며, 더 이상 유예하지 말고 1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게 옳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대해서는 법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므로 그 조항을 폐기하고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소위 세계표준(global standard)이다. 정부, 여당은 평소 그렇게도 세계표준을 주장하더니 노동 문제에 오면 왜 눈을 질끈 감고 꽉 막힌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나. 이 모든 착오는 노사정 기득권 집단이 각자 이익을 위해 불의의 야합을 한 데서 온 것이다. 이번 야합은 점수를 주려야 줄 게 없는 낙제 답안이므로 당장 폐기하고,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정답은 간단하다. 세계표준을 따르라.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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