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차관 참석한 한은 금통위에선…
“기억하라 관치금융, 금융위기 다시 온다.” “재정부는 각성하라, 한은 독립 사수, 투쟁!”
정부가 11년 만에 금융통화위원회 ‘열석발언권’을 행사한 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 정문 앞에서는 아침부터 날 선 구호가 쉴새없이 울려 퍼졌다. 금융노조와 한은 직원 20여명이 이날 아침 8시부터 열석발언권 행사에 반대하기 위해 연 집회였다. 배경태 한은 노조위원장은 “법적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에 참석 자체는 막지 않겠지만, 정부의 금통위 참석에 맞서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투쟁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8시43분께 허경욱 기획재정부 차관이 탄 ‘체어맨’ 승용차가 한은 정문으로 들어선 순간 긴장감은 고조됐다. 수십명의 취재진과 집회 참가자들이 차량을 막아섰다. 자칫 커다란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었지만, 별다른 불상사는 빚어지지 않았다. 한은 로비 앞에서 내린 허 차관은 긴장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8시55분께 한은 15층 금통위 회의실에 제일 먼저 들어선 허 차관은 거듭된 질문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정책 당국 간 공조가 중요하다는 게 이번 금융위기의 교훈이었다. 소통 강화를 위해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게 한국 경제의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참여했다.”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존중하지만, 기준금리 결정 과정에 정부의 정책 의지를 반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정부 대표’가 현장에서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새해 첫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2.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3월부터 11개월째 동결이다. 이날 금통위 회의는 예전과 다름없는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는 게 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허 차관도 ‘출구전략’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삼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관계자는 “‘그 사람’이 왔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해,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은 노조 쪽 관계자들은 금통위 회의장 입구에서 “총재님, 금통위원님 힘내세요, 국민이 있잖아요!”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금통위 뒤 열린 이성태 한은 총재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 총재는 “정부 대표의 열석에 대해 특별히 드리고 싶은 말이 별로 없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곧바로 “굳이 보탠다면 금통위의 의사결정은 금통위원이 하는 것이다. 의장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7명이 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금통위의 독립성이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또 그는 정부의 열석발언권이 미칠 영향을 두고 “결과를 보고 사후적으로 판단해달라”며 “이는 말보다는 행동을 보고 판단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정부와 한은의 경제 인식에 대해서도 “크게 봐서 별 차이는 없지만, 세세한 점에서 똑같을 수는 없다”며, 금리 인상 시기 등과 관련해 정부와 견해차가 있음을 내비쳤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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