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업체 대상 비실명 설문도
대형마트 가격인하 경쟁의 여파가 영세·중소 납품업체들의 납품가격 인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마트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직권조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22일 “현재까지 파악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대형마트들이 납품가격 인하 강요 등 불공정 행위 혐의가 있다고 보인다”며 “대형 유통업체들의 위법 행위에 대한 증거 확보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조사를 할 필요성이 있다”며 “다만 구체적인 조사 시점은 조사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미리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정호열 공정위원장도 전날 “대형 유통업체들이 농민이나 중소 납품업체에 대해 납품단가 인하 강요 등 불공정 행위를 통해 가격인하를 할 경우 제재에 나설 수 있다”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공정위는 지난주 초에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3개 대형마트 관계자들을 불러 가격인하 과정에서 불공정 행위를 하지 말도록 경고했다. 대형마트들은 가격인하 부담을 자체 마진율 축소나 주문량 확대를 통한 자연스런 납품가격 인하로 흡수해, 납품업체에 부당하게 전가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정위에 밝혔다.
공정위는 대형마트의 위법 여부를 가리려면 물증 확보가 관건이기 때문에 치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소 납품업체들의 경우 대형마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공정위가 조사를 나가도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며 “납품업체들을 대상으로 비실명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강구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대형마트와 대형 제조업체 간의 가격인하 줄다리기에는 개입하지 않을 방침이다. 시장의 경쟁 촉진을 통해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책목표인 공정위로서는 대형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가격인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소비자원 누리집에서 제공하는 지역·유통업태별 가격정보 품목을 현재의 20개에서 4월까지 80개로 늘릴 계획이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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