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엘지 액정표시장치(LCD)패널 상호협력 추진 상황
LCD 패널 협력 반년간 진전없어…“명분 내세운 사업 한계”
삼성과 엘지(LG)가 상대 제품을 서로 사주기로 한 양해각서(MOU)가 휴짓조각이 될 처지에 놓였다. 시장 상황의 변화 탓도 있겠지만, 별 의지 없이 손을 잡았다가 상호 불신만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과 엘지는 지난해 9월부터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용 패널을 상호 공급·구매하기로 양해각서를 맺었지만 반년 넘게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양해각서는, 삼성전자가 엘지디스플레이한테서 43.18㎝(17인치) 패널을, 엘지전자는 삼성전자한테서 55.88㎝(22인치) 패널을 각각 월 4만장 이상 구매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두 업체가 자체 생산하지 않는 크기의 제품을 교차구매함으로써 연간 1056억원가량의 수입대체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엘지가 삼성에 공급하기로 한 패널(17인치)은 ‘시장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교차구매가 무산됐다. 모니터 세트 수요가 20인치 이상으로 급속히 대형화하자, 삼성 쪽에서 17인치 제품 출시를 포기한 것이다. 또 삼성이 엘지에 팔기로 한 패널(22인치)은 ‘수급상의 이유’로 아직까지 거래가 성사되지 않고 있다. 22인치 패널은 지난해 11월 이후 공급 부족 상태여서, 기존 거래선 외엔 신규 물량을 줄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두 회사가 교차구매를 포기한 건 아니고 수급이나 시장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며 “17인치는 교차구매할 대체 품목을 찾고 있으며, 22인치는 공급할 물량을 조율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7인치 패널의 경우, 엘지는 패널 테스트를 마쳤고, 삼성도 제품 개발비용을 지출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시장 수요 등 상황이 달라지는 바람에 결국 개발비만 낭비한 셈”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양해각서에 담은 다른 협력 내용은 여전히 ‘검토중’이다. 당시 두 회사는 모니터용 패널 중에서 추가로 교차구매할 수 있는 품목을 올해 말까지 선정하고, 텔레비전용 대형 패널 부문의 교차구매도 검토하기로 했다. 당시 협약은 지경부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대기업 간 상생협력’의 중점사업으로 삼아 조율에 나선 지 2년여 만에 성사됐다.
업계에서는 서로의 이익이 아니라 명분을 앞세운 협력사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엘시디 장비업체의 한 임원은 “구속력 없는 약속을 지키려고 어느 한쪽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억지춘향식으로 맺은 양해각서가 오히려 계륵 같은 존재가 됐다”고 꼬집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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