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우회인수 현황
경제개혁연 “사모방식 발행 80건 중 의심사례 21건”
경영권승계·지배권강화 용도로 금융사 통해 인수
* BW : 신주인수권부사채
경영권승계·지배권강화 용도로 금융사 통해 인수
* BW : 신주인수권부사채
상장기업들이 대주주 가족 등의 경영권 승계나 지배권 강화 목적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악용하는 사례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 국내 금융사들이 이같은 신주인수권부사채 편법 인수에 도움을 주는 ‘중간 정거장’ 노릇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개혁연대가 9일 상장기업들이 지난 2007년 1월부터 2009년 6월 말까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기존 주주가 아닌 사람들에게 사모 방식으로 발행한 80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경영권 승계 등의 목적으로 대주주 일가 등에게 넘어간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21건(15개사)으로, 26.3%에 달했다. 이들 중 4건은 회사가 직접 대주주 일가 등에게 사채를 발행했고, 나머지 17건은 사채를 먼저 금융회사에 넘긴 뒤 대주주 일가 등이 되사는 편법을 동원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 인수자에게 일정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함께 부여한 사채다. 이들 상장사의 대주주들은 인수한 사채를 이용해 주식을 살 경우 지분율을 최대 11.4%까지 늘리는 효과를 얻는 것으로 계산됐다. 또 신주인수권부사채에는 주식값이 떨어지면 주식 인수가격이 자동으로 낮아지는 특혜(리픽싱 옵션)까지 붙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주인수권부사채 편법 발행의 중간 정거장 노릇을 한 금융회사로는 은행이 11건으로 가장 많고, 증권사 3건,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탈, 저축은행이 1건씩이다. 우리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 케이비창업투자 등과 같이 은행지주에 속한 곳까지 포함하면 은행의 비중은 76%에 이른다. 은행별(계열사 포함)로 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각각 3건, 외환은행과 산업은행이 각각 2건, 국민은행, 신한은행, 대구은행이 각각 1건이다. 우리은행은 참앤씨가 2007년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발행한 100억원 어치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한 뒤 며칠 뒤 회사의 사장과 부사장 등에게 신주인수권의 30%를 넘겼다. 하나은행은 코스맥스가 2007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발행한 40억원 어치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해서, 바로 당일 사모펀드를 거쳐 대주주인 이경수 대표 부부와 아들 형제에게 신주인수권의 57%와 70%를 넘겼다. 경제개혁연대의 김홍길 연구원은 “금융회사들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이 변칙 상속·증여나 지배권 강화 목적임을 알고서도 협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존 주주의 피해 등 자본시장의 질서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제재 근거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삼성·두산·현대산업개발·효성 등 여러 재벌들에 의해 변칙 상속·증여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대주주의 자녀 등과 같은 제3자에게 발행될 때는 발행 금액과 권리 등에 관해 정관에 명시하도록 하고, 발행 목적도 재무구조 개선, 신기술 도입 등으로 제한됐으나,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