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위기의 조선산업
신사업 외면 ‘덩치키우기’ 경쟁
선박수주 절반 줄자 구조조정
신사업 외면 ‘덩치키우기’ 경쟁
선박수주 절반 줄자 구조조정
지난 8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해양공장엔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뿌렸다. 하지만 이날 봄소식보다 먼저 날아든 건 ‘서늘한’ 인력 재배치 소식이었다. 일감이 부족한 조선사업본부 정규직 700명을 다른 사업본부로 전환배치하는 데 노사가 합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은 크게 술렁였다. 한 노동자는 “조회시간에 반장이 ‘전환배치 희망자를 우선 받되, 목표치인 부서 인원의 35%에 못 미치면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리할 것’이라고 통보하더라”며 “결국 전환배치→무급휴직→해고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그러나 회사 쪽은 “물량에 따른 부서 이동은 통상 있던 일”이라며 “일자리 나누기 차원”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의 ‘2010년 인력운용현황’을 보면, 4월부터는 생산직 1만7000명 가운데 25%인 4000명가량이 ‘유휴인력’이 된다. 선박 건조량이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는 탓이다. 인력뿐 아니라 설비도 남아돈다. 회사 관계자는 “4도크는 지금 건조중인 벌크선 작업이 끝나면 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서 도크 폐쇄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처음이다. 지난달엔 선박 4척을 짓던 육상건조장을 아예 철거하고 선박블록·해양설비 등을 만드는 야드로 활용하고 있다.
사내하청업체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육상건조장에 있던 협력업체 4곳은 폐업했고, 조선부문 사내하청 180여곳 가운데 일부는 지난 연말부터 직원들에게 ‘시급 10%·수당 50% 삭감’ 동의서를 받고 있다. 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근무 7년 만에 이런 일괄 임금삭감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노동자는 “협력업체뿐 아니라 정규직도 잔업·특근이 줄면서 실질임금이 줄었고,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구조조정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미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어닥친 곳도 있다. 회사가 352명 정리해고 방침을 통보한 한진중공업은 지금 ‘폭풍 전야’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국내에서 건조할 배를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해, 사내하청업체 11곳이 폐업했고 하청노동자 12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신설 조선업체들이 몰려 있는 전남지역은 조선경기 침체로 지역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다. 영암 대불산업단지에 있는 조선기자재업체 250여곳에선 지난 연말 기준으로 26억원의 임금 체불이 발생했고 4곳은 부도를 냈다.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의 위기가 촉발된 계기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였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할 대목도 있다. 2000년대 이후 호황에 취한 대형 조선소들은 기술개발이나 새로운 사업 개척보다는, 대형 도크를 더 파고 사내하청 인력을 늘리는 ‘덩치 키우기’ 경쟁에 골몰했다. 신설 조선소들도 우후죽순처럼 설립됐다. 그 결과 국내 9대 조선업체 사내하청 인력은 2000~2008년 5배 가까이 급증한 반면, 정규직은 3000여명 증가하는 기형적인 인력구조를 낳았다. 시장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충격의 여파가 오래 이어질 수 있다.
한국산업연구원 홍성인 연구위원은 “시장을 내다보지 못한 채 당장의 이익을 위해 과잉투자한 게 국내 조선업 위기의 핵심 문제”라며 “올해 시장전망도 밝지 않아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중장기 대응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울산/황예랑, 부산/이완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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