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발 재정위기와 천안함 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시중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이 많이 줄어들었다. 달러화로 예금을 한 고객들이 적극적인 차익 실현에 나선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27일 은행권의 자료를 보면, 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외환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은 지난 25일 현재 190억9700만달러로 4월 말보다 32억6800만달러(14.6%) 급감했다. 월 중 감소폭은 지난달(8억3500만달러)에 견줘 4배에 이른다.
시중은행의 외화예금은 지난 1월 말 218억5900만달러에서 두 달 연속 증가하면서 3월 말 232억달러까지 늘었지만, 4월 말 223억6500만달러로 줄어든 데 이어 이달에는 200억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이달 들어 외화예금이 대폭 줄어든 것은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환율은 이달 들어 남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상승세로 돌아섰고, 최근 남북관계 경색까지 겹치자 26일에는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인 1253.3원으로 뛰어올랐다. 5거래일 동안 환율 상승폭은 106.7원에 달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자 고객들이 대부분 단기성 자금인 외화예금을 해지하고 원화로 환전한 것 같다”며 “기업들이 자금 조달 운용 측면에서 외화예금 비중을 줄인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27일 환율이 전날보다 29.3원 급락한 1224.0원으로 거래를 마침에 따라 환율 하락을 예상하고 외화예금을 인출한 고객들의 전략은 일단 맞아떨어졌다. 외환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환율이 차츰 안정세를 찾아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남유럽 문제와 지정학적 리스크는 단기간에 해소될 문제가 아니지만, 외국인 채권투자가 지속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등 달러 수급 여건이 괜찮고, 당국도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환율 상승보다는 하락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가 계속되고 있는데다 남북 관계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당분간 변동성이 커지거나, 또 한 번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경팔 외환선물 연구원은 “불안한 분위기가 다소 진정됐지만 변동성이 워낙 커 아직 방향성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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