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그리스발 재정위기가 가라앉기는커녕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으로 확산 조짐을 보여 세계 증시가 급락 장세다. 1999년 이후 유럽 16개국은 유로존에 들어감으로써 독자적인 금리정책과 환율정책을 포기했고, 그것이 정책에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이 약점을 들어 폴 크루그먼은 유로존을 강력 비판한다. 유럽 각국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제한하는 ‘안정 성장 협약’을 맺었지만 각국은 밥 먹듯이 협약을 어겼다. 협약 위반 횟수에서 그리스가 1위이고,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포르투갈이 그다음으로서 정작 위기에 몰린 스페인, 아일랜드보다 위반 횟수가 더 많다. 1100억유로의 천문학적 금융지원에 대해서 그리스 노조와 시민은 시위로써 화답했다. 고대 민주주의 발상지 그리스의 현대사는 식민지, 외세 개입, 군부독재, 불신, 대립, 시위로 얼룩져 있다. 그리스의 유명한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이번 재정위기가 그리스와 독립국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미국 등 자본주의의 검은 세력이 꾸민 짓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그리스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지금도 그리스 국민의 다수는 1967년 군부쿠데타가 미국의 묵인 아래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에 개입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을 군사평의회로 부르는 그리스 사람도 있다고 한다. 테오도라키스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제곡,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시상식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아그네스 발차, 밀바, 조수미 등이 부른 유명한 노래)의 작곡가다. 테오도라키스는 젊은 시절부터 파시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수차례 투옥됐고, 1967년 이후 7년간의 군사독재 시절에는 국외 추방됐으며 그의 음악은 금지곡이 됐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 비유되고 있다. 10년 고생 끝에 친구와 가진 것 다 잃고, 벌거벗은 몸으로 고향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의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115%나 되는데, 아무리 재정긴축을 단행한다고 해도 매년 국가부채는 늘어나서 2013년에는 150%에 도달하리라는 우울한 예측이 나오고 있으니 그런 비유도 무리가 아니다. 유로존은 재정 긴축과 더불어 국가 간 재정 조정, 경쟁력 제고, 경제성장 방책 마련 등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유럽 각국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허리끈을 졸라매고 있다. 독일은 2016년까지 매년 100억유로씩 재정적자 감축 계획을 발표했고, 영국의 새 보수정부도 정부지출 60억파운드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재정 풍요에서 재정 긴축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따라서 각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인기가 폭락하고 있다. 청나라 5대 황제 옹정제는 집무실에 ‘왕 노릇하기 어렵다’(爲君難)는 현판을 붙여 놓았는데, 요즘 유럽을 보면 참으로 총리 노릇 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옹정제의 신하들은 ‘신하 노릇 하기도 쉽지는 않다’(爲臣不易)라고 답했다는데, 사실 재무장관 하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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