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 한-미 FTA 관련 주요 발언
‘기존협정문’ 안고치고
국회심의 거치지 않는
외교문서 교환 가능성
국회심의 거치지 않는
외교문서 교환 가능성
이달 중으로 한-미 통상당국이 지난 2007년 4월에 타결한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사실상 재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덕수 주미대사가 밝힌 ‘창조적 해법’(creative solutions)이 무엇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쪽 통상당국은 재협상을 하더라도 기존 협정문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만약 기존 협정문의 관련 조항까지 고칠 경우에는 국내 의견수렴 절차와 국회 비준동의 절차도 다시 밟야야 하기 때문이다.
재협상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요구사항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발언을 되풀이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에프티에이 전도사’라 불리는 한덕수 주미대사는 정부의 공식 태도와는 다른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한 대사는 지난 7월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 촉구 행사에서 “한국이 국내시장을 미국 쇠고기와 자동차에 개방하기 위해 ‘창조적인 해법’을 고려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23일 “한 대사가 ‘서울에서 더 많은 포드와 지엠 자동차를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실질적인 재협상 기간이 두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통상전문가들은 한 대사가 말한 창조적 해법이 밀실협상 같은 ‘꼼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양쪽 통상교섭 대표가 합의한 내용을 외교문서 형태로 서로 교환한 뒤 우리 쪽에서는 이 내용을 법률 시행령이나 관련 부처 장관 고시에 반영하면 공청회나 국회 심의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미국 쪽도 협정문을 뜯어고치는 형식적 요건보다 실질적으로 미국산 자동차의 판매를 높이는 방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도 국내의 비판 여론을 감안할 때 이런 방식이 ‘재협상 불가’라는 원칙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내세울 수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정문에 점(.)이든 콤마(,)든 다시 찍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협정문에 대한 재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지난 2008년6월 한-미 쇠고기 추가 협상 때도 비슷한 절차를 밟은 경험이 있다.
당시 미국은 ‘협상’(negotiation)이 아닌 ‘논의’(discussion)라고 주장했고, 촛불시위로 곤혹을 치른 이명박 정부는 이를 ‘재협상에 준하는 추가 협상’이라고 규정했다.
창조적 해법의 또 다른 예상 꼼수는, 미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포기한다는 조건 하에 자동차 분야에서만 재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검역주권이 걸린 쇠고기 분야를 재협상한다면 촛불시위 후폭풍을 다시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려면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하고, 국회에서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경우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에 파장을 불러 올 것이 뻔하다. 반면 자동차 분야는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현대·기아자동차의 반발만 무마하면 되기 때문에 쇠고기 보다 상대적으로 편한 이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재협상에 반대하지만 만약 재협상을 해야 한다면 농업,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등 우리 쪽에서 본 독소조항도 함께 개정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고 정부가 꼼수로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국민적 저항을 살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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