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온스당 1347달러…돌반지 선물 풍속 사라져
한은 “이자 없고, 리스크 커 안산다” 보유량 최하위
“10년간 손놔 투자실패…이제라도 사야” 지적도
한은 “이자 없고, 리스크 커 안산다” 보유량 최하위
“10년간 손놔 투자실패…이제라도 사야” 지적도
7일 서울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보석상 ‘금미당’. 한 돈(3.75g)짜리 돌반지 가격이 18만원이다. 주인 김아무개(45)씨는 “몇 년 전만 해도 하루에 대여섯개씩 돌반지를 팔았는데 요즘은 하루에 한개 팔기도 힘들다. 금값이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해서 금을 내놓는 사람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그나마 돌반지를 사는 사람은 몇 년 전 돌반지를 받았던 사람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돌반지를 사간다”며 “경조사비가 두 배가량 오른 셈이니 서민들만 힘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하루 다르게 뛰고 있는 금값 때문에 시중에 돌반지가 자취를 감추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금모으기 운동’으로 모은 금을 국외에 수출하기도 했다. 1998년 금 수출은 67억달러에 이르러 반도체·자동차·조선과 함께 4대 수출품목에 들어간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됐다. 외환위기 당시 한 돈에 4만~5만원선에 거래되던 금값은 금융위기 전후에 1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6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금 12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7.4달러 오른 온스(28.3g)당 1347달러70센트로 14번째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제 금값은 지난 2001년 온스당 250달러였다. 하지만 최근 국제 금값은 온스당 1000달러를 훌쩍 넘어서며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과거 금은 정치와 경제 불안에 대한 위험 회피 수단이 고작이었으나, 이젠 ‘상품통화’(commodity currency)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치솟고 있는 금값은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쓰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전자산인 금값이 오르면 주식이 떨어지고, 위험자산인 주식이 오르면 금값이 떨어진다. 바로 돈, 유동성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돈이 많이 풀려 있다 보니, 돈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올 수 있다는 우려로 실물자산인 금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지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유동성이 팽창하는 상황에서 자금은 일방적으로 한 자산에만 유입되지 않는다”며 “최근 세계 주식시장이 채권시장과 동반 강세를 나타내는 것 역시 글로벌 유동성 팽창에 따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이유는 투자 대상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흥모 한국은행 해외조사실장은 “유로화가 남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신뢰를 잃은 상태인데다 달러화 역시 미국이 달러화를 더 찍어내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판단에서 금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유시장에서 발을 뗀 국제 투기자본이 금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도 금값 폭등의 이유로 꼽힌다. 국제유가는 지난 2008년 7월 배럴당 140달러까지 올랐다. 원유의 잠재 수요에 더해 투기자본의 손이 뻗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에 유럽 재정위기마저 겹치면서 원유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1월 인도분 선물은 83달러23센트에 거래됐다. 지난 2008년 고공행진을 거듭했던 유가에 견주면 절반 수준이다. 치솟는 금값에 고민하는 쪽이 또 있다. 바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다. 사실 금의 가장 큰 수요자는 중앙은행이다.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액 중 일부를 금으로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988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으로 모인 금 가운데 3.04t을 산 뒤 11년 동안 거의 금을 사지 않았다. 현재 한은은 14.4t의 금을 갖고 있다. 외환보유액(2897억달러)은 세계 5위지만 금 보유량은 세계 56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중국은 지난 2000년 1분기 395t에서 최근 10년간 3배로 늘어난 1054t(6위)의 금을 갖고 있으며, 러시아는 최근 5년 동안 325t의 금을 사들였다. 지난 10년 동안 금값은 온스당 266달러에서 1347달러로 급상승해 5배 넘게 올랐다. 결과적으로 한은이 투자를 잘못한 셈이 됐다. 하지만 한은도 할 말이 있다. 금은 주식처럼 가격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많이 보유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은 갖고 있어야 이자 한 푼 붙지 않는데다 금 가격이 2000년대 초에는 290달러까지 폭락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중앙은행들이 금을 많이 팔았다”고 말했다. 언젠가 중앙은행들이 출구 전략을 쓸 경우 빠른 폭으로 금값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병헌 민주당 의원 같은 이들은 “한은이 지난 10여년 동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해왔다”며 “지금이라도 금 매수에 적극 나설 것을 고려할 때”라고 주장한다. 한은이 금을 매입하려면 불가피하게 보유하고 있는 미국 채권 등을 팔아야 한다. 이 때문에 금 매입에 나서지 않은 이유가 미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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