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협정 수정 대신 재협상 내용만 따로
미국이 언제든 재개정 요구할 길 터준셈
‘자동차 분야’ 사실상 다 내주기로 합의한듯
미국이 언제든 재개정 요구할 길 터준셈
‘자동차 분야’ 사실상 다 내주기로 합의한듯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기존 협정문을 고치지 않는 대신, 자동차 분야에서만 미국의 요구안을 반영하는 ‘추가 협정문’을 교환하는 방식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9일 통상장관 이틀째 회의에서 2007년 6월30일 통상대표들끼리 서명한 기존 협정문은 고치지 않고 자동차 환경·안전기준 등에 한해 ‘추가 협정서’ 작성에 합의했다고 정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전날 김 본부장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전기준 및 연비·배기가스 등 환경기준을 완화해 달라는 미국 쪽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미국은 쇠고기 시장 완전 개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을 큰 틀에서 합의했음을 내비쳤다. 최석영 자유무역협정 교섭대표도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쇠고기 문제는 아직 협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나라는 자동차 분야 세부사항에서 의견을 완전히 좁히지 못해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0일 통상장관 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다.
자동차 안전기준과 관련해서는 국내 수입되는 미국산 차가 일정 판매량을 넘어서지 않을 경우 몇 년간 미국 기준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또 2015년부터 연비를 ℓ당 17㎞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140g/㎞로 제한키로 한 환경기준도 미국산 수입차에는 완화해주는 방안이 집중 검토되고 있다. 한-미 협정에는 포함되지 않은, 대미 수출용 차에 대한 수입부품 관세환급제도는 한-유럽연합 협정을 준용해 발효 뒤 5년 후부터 관세환급률을 5%로 제한하는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런 내용을 별도의 협정문서로 채택하려면, 기존 협정문의 제6장(원산지 규정 및 원산지 절차)과 제9장(무역에 대한 기술장벽)의 부속서와 부속서한을 고쳐야 한다. 그러나 통상장관 회의에선 부속서나 부속서한을 손대지 않고, 미국법상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보충합의서’(Codicil)의 형태로 추가 협정서 작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하면 이미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한 기존 협정문의 비준동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을 필요가 없고, 야당이 요구하는 ‘전면 재협상론’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 협정서가 헌법 60조가 규정한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한 국제조약인지 여부는 법제처가 심의해 결정한다.
그러나 추가 협정서를 교환하면, 앞으로 ‘재협상의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통상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이 끊임없이 기존 협정문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지적했고,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추가 협정서를 계속 붙일 수 있으니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협상이 타결됐다고 선언하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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