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공회의소 의장 “사소한 조정 남았다” 언급
“쇠고기 논의 없었다”던 김 본부장 발언과 충돌
“쇠고기 논의 없었다”던 김 본부장 발언과 충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쇠고기 문제는 협정과는 다른 이슈여서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사흘간 열린 통상장관 회의에서 ‘별개 의제’로 논의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국 쪽 요청을 받아들여 협상 내용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와 관련한 이면합의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토머스 도너휴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10일 아침 국내에 진출한 미국 기업인들을 위한 조찬간담회에서 지난 9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났다고 소개한 뒤 “(이번 재협상에서) 쇠고기 문제는 4분의 3 정도 진행됐고, 마지막 구간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남은 내용은 큰 것이 아니라 사소한 조정이며 이를 마치면 앞으로 나가는 길을 터놓게 된다”며 특히 미국으로서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너휴 회장이 말한 ‘앞으로 나가는 길’은, 현재 30개월령 이하로 제한되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하거나, 또는 이를 본격 논의하기 위한 양쪽 당국자들끼리의 또다른 협상을 약속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너휴 회장은 조찬간담회 뒤 기자간담회에서 “쇠고기 문제는 협상하지 않고 있다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설명과 충돌한다”고 재확인을 요청하자 “쇠고기는 에프티에이 의제가 아닌, 사이드바(sidebar·별개) 논의사항”이라며 “(김 본부장은) 기존 협정문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쇠고기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앞서 김종훈 본부장은 지난 8일 재협상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쇠고기와 관련해 미국이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면서도 “쇠고기는 에프티에이 의제가 아닐뿐더러 국민 정서로 봐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 그는 또 “쇠고기 문제에 관해서는 (통상장관 회의에서)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고, 이후에도 통상당국은 쇠고기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고 되풀이해 확인했다.
그러나 도너휴 회장의 발언이 나온 뒤 정부 쪽 태도가 약간 달라졌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에 “미국 쪽에서 차제에 쇠고기 문제도 협의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인정했고, 정부의 한 소식통도 “한-미 통상장관 회의에서 미국이 끊임없이 쇠고기 문제를 거론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결국 미국의 요구로 시작된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자동차 분야는 양보, 쇠고기 문제는 원칙 사수’로 포장했던 정부의 협상 전략이 무색해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촛불집회 덕분에 그마나 30개월 미만으로 제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을 2008년 4월 최초 합의한 완전 개방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수순밟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애매한 조건부를 떼어낼 명분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것이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한-미 쇠고기 협상 당시 우리 정부는 주변국이 모두 한국과 같은 조건으로 수입할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처럼 개방을 합의한 나라는 없다”며 “되레 애매한 쇠고기 수입조건을 강화하는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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