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주 책임 외면·과열경쟁 묵인한채 매각 진행
전문가 “공적자금 기업 팔땐 종업원등 참여해야”
전문가 “공적자금 기업 팔땐 종업원등 참여해야”
현대건설을 놓고 벌이던 ‘치킨게임’이 끝났다. 인수전의 승자는 현대그룹이지만, 정작 ‘달콤한 열매’는 다른 데 갔다. 지분 매각으로 엄청난 차익을 챙기는 채권단이다.
현대그룹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100% 가까이 얹은 5조5000억원이란 인수 가격을 제시한 덕분에, 채권단은 4조원을 훨씬 웃도는 매각 차익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이 팔기로 한 현대건설 지분 34.88% 가운데, 각각 7~8%씩 갖고 있는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등이 가장 큰 수혜자다. 2001년 채권의 출자전환 등을 통해 주당 2만원 안팎에 취득한 현대건설 지분을 이번에 주당 14만1400원에 팔아, 각각 1조원가량의 차익을 얻는다. 증권가에서는 “천문학적인 매각 차익이 내년 1분기 은행권 당기순이익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평가한다. 채권단 쪽은 “9년 동안 자금이 묶여있던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큰 차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 가문이 ‘풀 베팅’하도록 멍석을 깔아준 건 채권단이었다. 채권단은 일단 ‘옛 사주의 책임’ 문제를 철저히 배제한 채 매각을 시작했다. 채권단이 정한 ‘매각 준칙’에 “부실 책임이 있는 옛 사주는 원칙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한다”고 돼있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현대 가문을 인수전에 참여시킨 것이다. 채권단 스스로도 “아예 참가 자격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산업 전반을 고려해 (범현대가에) 문을 열어준 것”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과열 경쟁’도 사실상 묵인해줬다. 현대그룹이 현대차를 비방하는 방송·신문 광고를 내거나, 현대차가 ‘현대건설 인수 후 청사진’을 발표한 것으로 인해 자칫 매각의 공정성에 시비가 일 수 있었지만, 특별히 문제삼지 않았다.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현대그룹이 주장한 우선매수청구권 논란이 대표적이다. 채권단이 애초 명확한 기준을 세워두지 않은 탓에, 만약 현대차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면 현대그룹이 소송까지 벌일 수 있는 사안이었다. 지금도 현대건설 노동조합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의 평가기준이나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등 채권단이 매각을 졸속으로 진행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매각공고 이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두 달, 본입찰 마감 이후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까지 24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초고속’ 진행 방식도 입길에 오른다. 기업 인수·합병 자문업체인 이솝(ESOP)컨설팅의 송호연 대표는 “곧 매각될 예정인 외환은행이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해 서두른 듯하다”며 “정책적 고려가 없는 워크아웃 기업 매각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는 “외환은행 매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내년 3월에야 현대건설 매각대금이 들어오기 때문에 당장 우리 몸값에 반영되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참에 채권단한테만 기업 매각을 맡겨두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현대건설 매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송덕용 회계사는 “자신의 경영권에 변동이 생기는 은행이 매각 주관자가 되면 자신의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을 매각할 때는 국회 추천, 종업원 대표 등이 참여하는 매각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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