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몽헌 회장 묘소 찾아 “건설 자산매각 없다”
하종선 사장 “주식매매계약 뒤 조달방안 밝힐것”
하종선 사장 “주식매매계약 뒤 조달방안 밝힐것”
오매불망 9년을 기다려온 일이었다. 시댁 가문의 견제와 대북사업 중단,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 압박 등 거친 파도에 흔들리기도 했다. ‘뚝심 있는 여장부’라도 견디기 힘든 나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간절함은 통했다. 현대건설 인수라는 숙원을 풀 날이 머지않았다.
18일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에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묘소를 찾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지난 8월4일 정몽헌 회장 기일 때 보였던 무겁던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전 11시께 선영을 참배한 뒤 준비해둔 원고를 읽어내려가는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첫 삽을 뜨고 정몽헌 회장의 손때가 묻은 현대건설을 이제야 되찾았다. 두 분도 많이 기뻐하셨을 거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사흘째인 이날은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지 12돌 되는 날이었다.
현대건설 인수 이후의 청사진도 내놨다. 현 회장은 “202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하고 녹색산업 분야와 차세대 기술을 확보해, 어렵게 되찾은 현대건설을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현 회장은 특히 현대건설 인수 이후 임직원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계열사 자산 매각 계획을 묻는 질문엔 “그럴 계획이 전혀 없다”고 못박았다.
현 회장은 5조5100억원에 이르는 자금조달 방안과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이번 일로 현대그룹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그동안 국내외 투자자들과 접촉해왔고 (자금 조달은) 염려 안 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프랑스 나틱시스 은행에서 조달한 1조2000억원가량의 자금 성격 등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한 질문엔 “비밀유지 확약서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을 총괄지휘한 하종선 전략기획본부 사장도 “의심의 여지없이 본계약까지 갈 것”이라면서도 “주식매매계약(SPA) 이후에 자금 조달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밝히겠다”고 선을 그었다. 하 사장은 “(급락했던 현대그룹 계열사 주가가) 오늘은 좀 안정되지 않았느냐”며 시장의 우려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현 회장은 채권단이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재추진하려는 것과 관련해 “현대상선의 실적이 이미 굉장히 좋아졌기 때문에 크게 문제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2년째 중단된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해서도 “정부에 일임할 문제”라고 전제한 뒤 “너무 오랫동안 대치했기 때문에 이젠 재개할 타이밍이 됐다고 본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날 기자들과 이야기하면서 현 회장이 가장 환하게 웃은 순간은 인수전 경쟁자였던 현대자동차와의 관계 복원을 언급할 때였다. “앞으로 잘 지낼 거다. 몽구 회장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며, 집안의 정통성은 그분한테 있다.” 그동안 쌓인 앙금을 털어내기 위한 화해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남/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