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7일 오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재협상은 없다”고 했던 자신의 종전 발언이 지켜지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한-미 FTA 별도 비준 논란
미 정부 무역촉진권 유지토록 ‘부속문’ 형식 취해
한국선 득실 점검 어려운데다 국회 통과도 복잡
미 정부 무역촉진권 유지토록 ‘부속문’ 형식 취해
한국선 득실 점검 어려운데다 국회 통과도 복잡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마친 정부가 기존 협정문을 고치는 대신 따로 합의서를 작성해 별도로 국회 비준 동의를 밟으려는 것은 미국 행정부를 배려한 측면이 강하다. 그래야만 미국 통상법에 따른 행정부의 ‘무역촉진권한(TPA)’이 기존 협정문에 그대로 유지돼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촉진권한이란 미 의회가 가진 대외 통상조약 체결권한을 대통령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의회는 협상 결과의 이행법률안에 대한 찬반 표결만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에 적용을 받는 협정의 이행 법률안은 상하 양원에서 과반수 찬성만 받으면 법률로 효력을 갖는다. 하지만 이 제도는 2007년 6월30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식 서명과 함께 시한이 만료됐다.
이에 따라 두 나라가 만약 기존 협정문의 자동차 분야 등을 뜯어고쳐 한-미 에프티에이 재협상 결과를 반영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더 이상 무역촉진권한을 적용받을 수 없게 된다. 무역촉진권한이 없는 상황에서는 협정문을 상원의 해당 상임위원회인 재무위원회에서 수정할 수도 있고, 이행법안도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된다.
추가 합의서를 양국 통상 대표간 주고받는 서신 형식으로 작성함으로써 미국은 까다로운 의회 비준 과정을 비껴가게 됐다. 추가 합의서에는 미국의 자동차 관세 2.5% 4년간 유지, 자동차 특별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 도입 등 미국에 유리한 내용만 담겨 있어 미 상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우리 국회의 동의 여부다. 정부가 미국을 배려해서 추가 합의서를 기존 협정문과 별개로 작성하고, 또 국회에도 따로 제출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 득실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기가 힘들어진다. 또 핵심 내용에서 서로 모순되는 조항이 있는데도, 국회에 모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사 표시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협상으로 기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 효과가 어떻게 달랐는지 제대로 분석하려면 정부는 기존 협정문을 철회하고 추가 합의서 내용까지 포함한 새로운 협정문을 국회에 제출해 처음부터 심의를 밟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일방적인 양보’라고 평가받는 추가 합의서를 단독으로 심의받는 것보다 정치적으로도 덜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조약이 발효되고 난 다음에 수정할 때에는 조약문을 꺼내서 지우개로 지우는 것이 아니다. 조약문을 그대로 두고 몇조, 몇조를 고치고 이렇게 해서 수정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협정문과 재협상 결과를 따로 처리하자는 주장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한-미 협정을 맺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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