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채권단이 정한 현대그룹의 대출계약서 제출시한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사옥앞으로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현대건설 주식 3자에 담보제공 안해” 확인하는 내용
채권단 MOU 유지 여부 ‘주목’… 매각 장기화 조짐
채권단 MOU 유지 여부 ‘주목’… 매각 장기화 조짐
현대건설 채권단의 지분 매각 작업이 꼬일 대로 꼬여 해를 넘기고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그룹은 1조2000억원이 예치돼 있는 프랑스 은행 나틱시스로부터 ‘2차 대출확인서’를 받아 14일 채권단에 제출했다. 이날은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인수자금 조달 증빙서류를 내도록 요구한 최후통첩 시한이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이날 낸 대출확인서는 채권단이 요구한 대출계약서나 세부 계약 조건을 담은 ‘텀 시트’(Term Sheet)가 아니다. 이 때문에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백지화해,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갈 여지가 생겼다. 당장 현대건설 인수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은 “대출계약서가 아닌 다른 문서(확인서)로 대체돼서는 안 된다”며, 채권단에 현대그룹과의 양해각서를 해지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채권단은 2차 대출확인서에 대한 법률 검토를 받아 15일 외환은행·정책금융공사·우리은행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친 뒤, 다음주 중 주주협의회를 열어 현대그룹과의 양해각서 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현대그룹 “텀 시트는 없다” 채권단의 압박에 이날 현대그룹이 내놓은 카드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지난 한 달 남짓 보여온 ‘버티기’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13일 나틱시스에서 받은 ‘2차 대출확인서’는 앞서 지난 3일 채권단에 제출했던 “1조2000억원은 무담보·무보증 대출”이라는 내용의 1차 확인서와 비슷한 서류다. 이 대출에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이나 현대건설 주식을 제3자를 통해 담보로 제공하지 않았고, 여전히 현대상선 프랑스법인 명의의 계좌에 돈이 그대로 들어 있다는 사항을 확인했을 뿐이다. 현대그룹 쪽은 “채권단이 요구하는 텀 시트는 애초 작성되거나 체결된 적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대그룹은 되레 “채권단이 갑자기 대출계약서 대신 텀 시트를 제출해도 무방하다고 통보해온 것은 증빙서류 제출 요구가 얼마나 부당한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역공을 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채권단 공식 반응은, ‘제출 서류를 검토한 뒤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게 전부다. 하지만 속으로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자료 제출 요구 수준을 애초 ‘대출계약서’에서 ‘대출계약서 또는 텀 시트’로 완화했는데도 현대그룹이 이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채권단 일부에선 현대그룹이 또다시 대출확인서를 낸 만큼 이를 인정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반응도 나왔다.
■본계약 때 ‘무효화’ 가능성도 채권단의 선택은 두 가지다. 우선 2차 대출확인서가 자금출처 의혹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경우, 전체 채권단 회의인 주주협의회를 열어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 해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추가 자료 제출로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인 만큼 ‘양해각서 해지’라는 선택을 하기엔 채권단 쪽 부담이 너무 크다. 채권단 내부에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채권단이 일단 매각 절차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채권단으로서는 현대그룹이 법원에 내놓은 ‘양해각서 해지 금지 가처분신청’ 등 후폭풍을 일단 피한 뒤, 본계약 체결 때 무효화할 근거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그룹 인수자금의 명확한 출처에 대한 소명을 받지 않고 본계약을 맺으면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정치권 움직임도 채권단한텐 압박이 될 전망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채권단·현대그룹·현대차 3자 사이의 치열한 법적 공방은 불가피하다. 현대건설 매각 작업도 장기간 표류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날 “현대그룹이 법적 효력이 없는 확인서를 다시 제출한 것은 채권단의 요구를 무시한 처사”라고 말했다. 현대차 쪽은 대출확인서가 양해각서 유지에 유효한지 여부 등을 쟁점으로 법원에 각종 소송을 낼 것을 검토중이다. 이미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현대그룹과 현대차 쪽이 제기한 민형사소송은 7건에 이른다.
황예랑 김수헌 기자 yrcomm@hani.co.kr
현대건설 매각 향후 시나리오
황예랑 김수헌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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