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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올 채용시장 대세, 스펙 아닌 ‘스토리’

등록 2011-02-09 19:27수정 2011-02-09 19:45

남다른 경험으로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 왼쪽부터 에스시 제일은행 이지성씨·삼성물산 김민혁씨·대우인터내셔널 황종우씨·엔에이치엔 마승준씨.  각사 제공
남다른 경험으로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 왼쪽부터 에스시 제일은행 이지성씨·삼성물산 김민혁씨·대우인터내셔널 황종우씨·엔에이치엔 마승준씨. 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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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26)씨는 숙명여대 통계학과 졸업학기를 앞둔 2009년 2월 에스시(SC)제일은행에 취업원서를 냈으나 면접도 보지 못하고 인적성검사에서 떨어졌다. 은행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그런 안이한 태도가 문제였다. 이씨는 망설임 끝에 회사가 마련한 소설가 신경숙 초청강연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은행이 자신이 꿈꾸던 일터라는 확신을 얻었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는 기업문화나 바뀐 여직원의 유니폼이 불편하지 않는지 세심히 묻는 은행장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도전할 가치가 있는 회사라고 판단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번에는 철저한 준비가 뒤따랐다. 우선 회사가 여는 채용설명회를 수십군데 쫓아다녔다. 기본적인 발표 내용은 같지만, 질의응답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해 8월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은행 영업점 10여곳을 들락거렸다. ‘선배’ 행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고객이 없을 때는 질문지를 조심스레 건넸다. 질문지에는 어떤 인재상을 원하는지, 인기있는 상품은 무엇인지 등 궁금한 점 10여가지를 빼곡히 적었다. “한 분도 싫다고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답하며 응원해줬다.” 그해 12월 이씨는 드디어 두번째 도전에 나섰다. 학점과 토익점수 등 ‘스펙’은 10개월 전과 똑같았지만 이번에는 합격했다. 이씨는 “처음 떨어진 뒤 포기하지 않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니까 면접이 한결 편했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는 올해 채용시장에선 스펙이 지고 이씨처럼 ‘나만의 스토리’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직자들의 스펙이 상향 평준화된데다 실제 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진 탓이다. 기업들도 자기소개서의 질문 항목을 더욱 구체화하고 사례 중심으로 정리하도록 요구하는 등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량과 경쟁력을 ‘내가 일구어낸 경험’으로 풀어내라는 얘기다.


직장생활을 해보니 도움이 안 되는 스펙은? /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지난해 2월 삼성물산에 입사한 김민혁(28)씨는 2008년 2~7월에 리비아에서 인턴을 했다. 다른 대학을 1년간 다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뒤늦게 입학한 김씨는, 리비아 트리폴리에 본부를 둔 외국계 중소기업에서 5개월간 인턴을 하려고 휴학할 때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 안 그래도 졸업이 늦는 판에 무슨 시간 낭비냐는 질타였다. 그러나 김씨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것은 대학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믿음에 과감히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낯선 땅에서 보편적 상식이 나라마다, 문화마다 얼마나 다른지 절감했다. 술 판매가 금지된 나라에서 암시장에서 마약을 구매하듯 술을 거래하는 것을 봤고, 비자를 시간에 맞춰 받아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배웠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체험으로 깨달았다. 김씨가 떠나는 날 현지인은 그에게 “친구, 사랑해”라고 말하며 배웅했다.

김씨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입사 면접 때마다 국외 인턴 경험을 집중적으로 질문받았다. 그때마다 생생한 사례를 풀어내며 글로벌 기업에 필요한 인재라는 걸 실증했다. 졸업을 3개월이나 앞두고 합격통지서를 받은 김씨는 남미로 40일간 대학시절의 마지막 국외 여행을 떠났다.

지난해 10월 대우인터내셔널에 입사한 황종우(27)씨는 초등학생 시절 국외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브라질에서 4년간 살았다. 그때 배운 포르투갈어와 영어를 잊지 않으려고 남미 친구들과 인터넷으로 채팅하거나 남미 음악을 들었고,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서는 스페인어를 부전공했다. 황씨의 꾸준한 노력은 지난해 4월 케이(K)리그 프로 축구클럽인 포항 스틸러스에서 7개월간 인턴을 하며 빛을 발했다. 브라질 출신 선수와 가족이 한국에 잘 적응하도록 매니저로, 친구로 다가갔다. 황씨는 외로움에 시달리는 선수와 함께 고향 음식을 요리하고, 선수 가족이 병원을 갈 때 동행하기도 했다. 세계 어디서든,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황씨는 결국 국외 영업직에 도전해 합격했다. 황씨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내 장단점을 분석해 그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그 과정이 남달라 꿈의 직장에 취업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 엔에이치엔(NHN)이 처음 선보인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을 거쳐 입사한 마승준(28)씨가 그런 사례다. 한양대에서 정보기술경영학을 전공한 마씨는 소프트웨어 개발 언어를 배우려고 지난해 1월 엔에이치엔의 예비 멤버십 과정에 참가했다.

개발 언어를 전혀 모르던 마씨는 뒤처지지 않으려고 소프트웨어를 파고들었다. 오류가 나서 풀리지 않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고민 끝에 해결하는 성취감을 맛봤고, 그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마씨는 교육 과정 우수자로 뽑혔고 멤버십 과정(3개월)을 다시 신청했다. 모바일 검색광고 관리 툴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마씨는 가장 먼저 출근해 마지막 셔틀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열의를 보였다. “곁눈질하지 않고 목표 기업만 바라보며 전력질주하고 싶었다.” 지난해 말 마씨는 최종 합격이라는 기쁨을 누렸다.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수치화된 스펙에서 벗어나 실제 업무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남다른 경험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추세를 구직자가 읽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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