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발언뒤 정유사 깜짝인하
국제유가 오르자 다시 인상 주유소 “유사석유 단속부터”
“폭리-세금탓” 공방 되풀이 휘발유값 ℓ당 1900원 돌파 기름값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지난 5일 ℓ당 1900원선을 돌파했다. 지난달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어선 두바이유 가격은 현재 110달러를 넘나들며, 고유가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름값을 둘러싼 공방은 정부 → 정유사 → 주유소 → 정부를 차례로 맴돌고 있지만, 기름값 상승세에 제동을 거는 데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기름값 미스터리’의 비밀은 어디 있을까? ■ “묘하다” 발언, 정유사에만 반짝‘약발’? 기름값 논란에 처음 불씨를 당긴 장본인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13일 국민경제대책회의 자리에서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정유사를 정면으로 겨눈 듯한 이 발언 직후,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 4사를 상대로 곧장 현장조사에 나섰고, 이어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공정위는 합동으로 전문가 등과 함께 ‘석유가격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기도 했다. 효과는 곧장 나타났다. 1월 둘째주 ℓ당 835.80원이던 정유사 공급 휘발유값은 2월 첫째주엔 818.80원까지 17원이나 떨어졌다. 이 기간 중 국제 휘발유값은 배럴당 103달러대에서 3주 연속 배럴당 1달러씩 올랐다. 통상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일주일 뒤 국내 정유사 공급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통상적인 관례와는 동떨어진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2월 첫째주 원유값과 국제 휘발유값이 배럴당 3달러가량씩 크게 오르자, 정유사들은 2월 둘째주에 주유소 공급가를 ℓ당 20원 넘게 인상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섰는데 우리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며, 정부의 압박에 일시적인 ‘소나기 피하기’로 대응했을 뿐임을 내비쳤다. ■ 마진 폭 줄어든 정유사, 주유소만 ‘횡재’?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이 이처럼 오르고 내리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정작 소비자가격은 거침없이 오르기만 했다. 실제로 1월 첫째주 829.50원이던 정유사 공급가격은 1~2월 사이 두차례 오르고 내리기를 반한 끝에 2월 넷째주엔 847.90원으로 올라섰다. 이와는 달리 이 기간 중 주유소 판매가격은 1817.31원에서 1856.64원까지 쉼없이 치솟기만 했다. 겉으로 드러난 인상률 2.16%은 정유사 공급가 상승률(2.22%)과 비슷했지만, 판매가격의 절반 정도가 사실상 고정된 세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인상률은 정유사 공급가격 상승률의 갑절인 셈이다. 결국 정부 눈치를 보느라 정유사가 내놓은 마진이 주유소에서 고스란히 흡수된 꼴이다. 물론, 주유소 측도 하소연을 한다. 정상필 한국주유소협회 기획팀장은 “정유사에서 매주 평균 공급가를 발표하지만 주유소들의 실제 구매 시점이 몰려있는 월말과 주말에는 공급가가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전국 주유소 숫자는 적정치보다 5000개가량 많은 1만3000개로 과당 경쟁중이며, 마진도 신용카드 수수료(1.5%)를 제외하면 3~4%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 주유소‘화풀이’는 다시 정부에게? 이러다 보니 정작‘종착역’인 소비자가격을 코앞에 두고 다시 공은 정부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최근 자료를 내어 “유사석유 유통으로 인한 탈루세액이 한해 4조7000억원에 이른다”며 “이는 20조원이 약간 넘는 유류세의 20%가 넘는 액수로, 유사석유 단속만 제대로 해도 유류세를 ℓ당 200원 가까이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 구멍부터 제대로 메우는 게 관건이라는 주문으로, 사실상 정부에 ‘화풀이’를 하고 나선 꼴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도 “정부가 (중동국가들이 동아시아 나라들에만 배럴당 1~1.5달러씩 더 비싸게 파는) ‘아시아 프리미엄’ 문제 등은 해결하지 않고 만만한 업계만 군기를 잡고 있다”며 공돌리기를 거들고 나섰다. 결국 유가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사이 국내 기름값을 둘러싼 논란은 “폭리”(정부→정유사)에서 “마진 흡수”(정유사→주유소)를 거쳐 다시 “세금문제”(주유소→정부) 공방으로 되돌이표만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국제유가 오르자 다시 인상 주유소 “유사석유 단속부터”
“폭리-세금탓” 공방 되풀이 휘발유값 ℓ당 1900원 돌파 기름값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지난 5일 ℓ당 1900원선을 돌파했다. 지난달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어선 두바이유 가격은 현재 110달러를 넘나들며, 고유가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름값을 둘러싼 공방은 정부 → 정유사 → 주유소 → 정부를 차례로 맴돌고 있지만, 기름값 상승세에 제동을 거는 데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기름값 미스터리’의 비밀은 어디 있을까? ■ “묘하다” 발언, 정유사에만 반짝‘약발’? 기름값 논란에 처음 불씨를 당긴 장본인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13일 국민경제대책회의 자리에서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정유사를 정면으로 겨눈 듯한 이 발언 직후,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 4사를 상대로 곧장 현장조사에 나섰고, 이어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공정위는 합동으로 전문가 등과 함께 ‘석유가격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기도 했다. 효과는 곧장 나타났다. 1월 둘째주 ℓ당 835.80원이던 정유사 공급 휘발유값은 2월 첫째주엔 818.80원까지 17원이나 떨어졌다. 이 기간 중 국제 휘발유값은 배럴당 103달러대에서 3주 연속 배럴당 1달러씩 올랐다. 통상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일주일 뒤 국내 정유사 공급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통상적인 관례와는 동떨어진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2월 첫째주 원유값과 국제 휘발유값이 배럴당 3달러가량씩 크게 오르자, 정유사들은 2월 둘째주에 주유소 공급가를 ℓ당 20원 넘게 인상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섰는데 우리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며, 정부의 압박에 일시적인 ‘소나기 피하기’로 대응했을 뿐임을 내비쳤다. ■ 마진 폭 줄어든 정유사, 주유소만 ‘횡재’?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이 이처럼 오르고 내리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정작 소비자가격은 거침없이 오르기만 했다. 실제로 1월 첫째주 829.50원이던 정유사 공급가격은 1~2월 사이 두차례 오르고 내리기를 반한 끝에 2월 넷째주엔 847.90원으로 올라섰다. 이와는 달리 이 기간 중 주유소 판매가격은 1817.31원에서 1856.64원까지 쉼없이 치솟기만 했다. 겉으로 드러난 인상률 2.16%은 정유사 공급가 상승률(2.22%)과 비슷했지만, 판매가격의 절반 정도가 사실상 고정된 세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인상률은 정유사 공급가격 상승률의 갑절인 셈이다. 결국 정부 눈치를 보느라 정유사가 내놓은 마진이 주유소에서 고스란히 흡수된 꼴이다. 물론, 주유소 측도 하소연을 한다. 정상필 한국주유소협회 기획팀장은 “정유사에서 매주 평균 공급가를 발표하지만 주유소들의 실제 구매 시점이 몰려있는 월말과 주말에는 공급가가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전국 주유소 숫자는 적정치보다 5000개가량 많은 1만3000개로 과당 경쟁중이며, 마진도 신용카드 수수료(1.5%)를 제외하면 3~4%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 주유소‘화풀이’는 다시 정부에게? 이러다 보니 정작‘종착역’인 소비자가격을 코앞에 두고 다시 공은 정부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최근 자료를 내어 “유사석유 유통으로 인한 탈루세액이 한해 4조7000억원에 이른다”며 “이는 20조원이 약간 넘는 유류세의 20%가 넘는 액수로, 유사석유 단속만 제대로 해도 유류세를 ℓ당 200원 가까이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 구멍부터 제대로 메우는 게 관건이라는 주문으로, 사실상 정부에 ‘화풀이’를 하고 나선 꼴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도 “정부가 (중동국가들이 동아시아 나라들에만 배럴당 1~1.5달러씩 더 비싸게 파는) ‘아시아 프리미엄’ 문제 등은 해결하지 않고 만만한 업계만 군기를 잡고 있다”며 공돌리기를 거들고 나섰다. 결국 유가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사이 국내 기름값을 둘러싼 논란은 “폭리”(정부→정유사)에서 “마진 흡수”(정유사→주유소)를 거쳐 다시 “세금문제”(주유소→정부) 공방으로 되돌이표만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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