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리일정 늦어질 듯
정부가 번역 오류를 고쳐 국회에 다시 제출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의 한글본에 또다른 오류가 많다는 점이 확인됨에 따라(<한겨레> 3월7일치 1면),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7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정부가 새롭게 확인된 번역 오류를 수정한 다음 법안심사소위에서 비준동의안을 재심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9일 국회 외통위에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켜 본회의에 상정하려던 정부·여당의 비준동의 처리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한겨레>가 보도한 4가지 번역 오류 중 건축사 자격과 설탕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오류를 인정했다”며 “이 때문에 법안심사소위 심의가 미뤄졌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정부는 이런 오류가 실제 통상행위에선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며 “정부 해명이 맞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번역상 실수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고 더이상 외교부의 자유무역협정 티에프를 신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민주당은 한-미,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문 번역을 다시 외부 용역을 맡기도록 외교부에 요구했다. 민주당은 또 현재 유럽연합에 가 있는 협정문 한글본도 유럽연합 쪽과 협의해 다시 수정할 것을 주문했다.
앞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건축설계서비스 시장개방 규정과 관련해, 한글본에서는 ‘5년의 실무수습을 한 자’로 규정돼 있지만, 영문본에서는 5년 실무수습 의무조항이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5년 실무수습이라는 표현이 없더라도 우리나라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건축사법 자격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한글본의 문구는 우리 건축사 자격시험 응시요건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우리 건축사법을 개정해 응시요건을 실무수습 10년으로 늘리면 한글본 협정문과 어긋나는데 어떻게 되느냐”고 반박하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정부의 해명에 대해 송기호 변호사는 “영문본에는 ‘외국 건축사는 간단한 시험만 응시하면 대한민국 건축사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고 돼 있기에 유럽연합 쪽에서 그 협정문을 근거로 ‘실무수습 5년’이라는 자격요건을 따르지 않겠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신용평가서비스 개방과 관련한 조항에서 영문본의 “금지하거나 제약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한글본에서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아니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고 번역한 것에 대해 민 차관은 또 “정부가 재량이나 선택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는 우리 쪽의 약속을 의미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률상으로 ‘동의할 수 있다’는 표현은 재량권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한글본과 영문본은 법적 구속력을 다르게 표현해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협상을 영어로 진행한 뒤 수백장을 한달 만에 한글본으로 번역하고 정본으로 인정하니까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이제라도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한-유럽연합,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협정문을 면밀히 검토해 오류를 고쳐야 나중에 발생할 엄청난 분쟁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은주 이유주현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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