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무시하거나 눈치보거나
현대차 “그런 얘기 없었다” 정운찬 “MK에 설명” 엇갈려
전경련 등 뭉개기 전략 일관…정부 의중 살피며 ‘주판알’
현대차 “그런 얘기 없었다” 정운찬 “MK에 설명” 엇갈려
전경련 등 뭉개기 전략 일관…정부 의중 살피며 ‘주판알’
무시하거나 눈치보거나…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기업들의 반응이다. 지난해 청와대가 나서 ‘공정사회’나 ‘상생’ 화두를 꺼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초과이익공유제를 처음 제안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나 정부 및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속으로만 주판알을 굴리고 있는 것이다.
8일 아침 정운찬 위원장이 방문한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에서도 이런 모습이 엿보였다. 정 위원장은 아침 7시30분 예정된 ‘동반성장의 길과 대-중소기업의 역할’이란 주제 강연에 앞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과 차를 마시며 2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반응은 엇갈렸다. 정 위원장은 기자와 만나 “(정 회장께) 이익공유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고 말했지만, 현대차 쪽은 “이익공유제 얘긴 오가지 않았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날 비공개로 1시간 가량 진행된 강연 내용을 두고도, 현대차 쪽은 “동반성장이 화두였다”며 이익공유제란 단어 자체가 거론되는 것을 꺼려했다.
강연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정의선 부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부회장단, 협력업체 사장단 등이 총출동해 대강당 800여개 좌석이 부족할 정도였고, 다른 기업들에서도 이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 위원장은 “대기업들이 이익 중심의 경영으로 인해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대기업의 역할은 생산과정부터 중소기업과의 나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동반성장은 시혜나 온정주의가 아닌 경제학적인 문제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강연 참석자들이 전했다.
다른 기업들은 애써 무시하며 더 이상의 논의 확산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삼성그룹 고위임원은 “(이익공유제를 그룹 차원에서 검토한 적이) 전혀 없다”며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불거지거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것도 아닌데 개별 기업이 검토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엘지(LG)나 에스케이(SK), 포스코 등에서도 한결같이 “이익공유제 개념이 모호해 할 말이 없다”거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는 10일 회장단 회의를 앞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보다 철저하게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만찬 자리 등에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회의 안건으로 올리거나 전경련이 논의를 주도하진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 위원장의 분주한 행보와는 달리 기업들이 사실상 ‘뭉개기’ 전략으로 일관하는 것은, 구체적인 실행계획 없이 돌발적으로 제안된 탓에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정부가 정 위원장의 제안에 힘을 실어줄 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7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익공유제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거리를 뒀다. 정 위원장의 제안을 두고 ‘정치적 노림수’라는 의구심이 사그러들지 않는 탓도 크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이날도 “(강연이나 기업 최고경영자와의 만남을) 다른 여러 기업들과도 추진하려고 한다”며,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황예랑 김경락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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