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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외교부 ‘조약문 번역 지침’ 스스로 어겨

등록 2011-03-09 21:03수정 2011-03-10 10:21

외교통상부가 마련한 ‘우리말 조약 작성 원칙’ 및 번역 오류 사례
외교통상부가 마련한 ‘우리말 조약 작성 원칙’ 및 번역 오류 사례
외교부 발간 책자 기준대로 ‘FTA번역’ 보니
외국어 조약문 뜻 가감 안돼는데…
50개 넘는 조항서 ‘any’의 뜻 삭제

필요땐 의역해야 하는데…
‘발명의 완성(posses)’을 ‘소유’로 오역

법문식 표현 써야하는데…
‘청약(offering for sale)’을 ‘제공’으로 오역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정문 한글본에서 잇따라 나오는 번역 오류를 두고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지금까지 해온 해명이 외교부 스스로 만든 조약문 작성 지침과도 어긋나는 것으로 9일 확인됐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외교부 조약국 발간 <알기 쉬운 조약업무>의 제13장을 보면, ‘우리글로 표현된 조약문은 우리말로서의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면서 외국어로 된 조약문과 대비해 법문으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뜻에 가감이 없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를 위해 외교부는 조약문을 우리 글로 작성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을 5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외국어로 된 조약문이 담은 뜻을 가감하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유럽연합 협정문 한글본에선 영문본의 ‘any’라는 표현을 무려 50여개나 뺐다. 국내 법령에서 ‘일체’, ‘어떤’이라는 표현은 있는 것과 없는 게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공무원에게 ‘일체의’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것과 그냥 쟁의행위를 금지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다르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다. 그런데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애니(any)는 문맥상 반드시 필요하지 않으면 번역할 이유가 없다는 게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가급적 순수한 우리말로서 자연스러움을 지닌 문장으로 표현할 것’도 강조했다. 그런데 협정문 한글본에는 전문가가 보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비문이 수두룩하다. “청구된 발명의 공개가 그 기술분야에 숙련된 인에게 그 지침을 청구의 전체 범위로 확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출원인이 출원일에 인지하거나 기술하지 아니한 대상이나, 또는 소유하지 아니하였던 대상을 청구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 청구된 발명은 그 공개에 의하여 충분히 뒷받침된다.”(한-미 자유무역협정 제18조 제10항 가호)

게다가 여기서 ‘소유’(possess)라고 표현한 대목은 ‘(발명 등의) 완성’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게 특허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필요한 경우 의역을 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반의역이라도 할 것’이라는 지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알기 쉬운 조약업무>는 의역이나 반의역이 필요한 이유를 ‘법문으로서 의사전달 목적이 근본적으로 훼손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기준이라면 한-미 협정문 한글본 제18.8조 특허분야에서 영어 ‘inequitable conduct’는 ‘불공정 행위’가 아니라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 제18.2조 지리적 표시 상품 분야에서 ‘cause mistake’는 ‘실수를 야기하거나’가 아니라 ‘오인을 야기하거나’로 바꿔야 한다는 남희섭 변리사의 지적이 타당하다.

지침은 또 ‘자연스러운 우리글인 동시에 법문식 표현’을 주문하며 국내 법령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문구를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법령에선 ‘판매의 청약’(offering for sale)으로 쓰이는 구절을 한-유럽연합 협정문 한글본 제10.28조에선 ‘판매를 위한 제공’으로 번역했다.

<알기 쉬운 조약업무>는 12장에서 조약 체결을 위한 국내 절차도 명시했는데, ‘조약문의 국문본을 포함한 각 언어본이 충실하게 준비되었는가를 최종 점검한 뒤에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한-미, 한-유럽연합 협정문의 한글본에서 드러난 오류들은 외교부의 준비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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