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기 맞아 선영 참배…현 회장, 일부러 만남 피한듯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엇갈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열흘새 네 차례나 관련 행사에 나란히 참석했다. 그러나 현대건설 인수전으로 쌓였던 앙금은 아직 풀리지 않은 눈치다.
정 명예회장의 기일인 21일 오전 두 사람은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찾았으나 얼굴을 마주치진 않았다. 정몽구 회장이 오전 9시45분께 선영에 도착해 가족참배를 하고 10시17분께 빠져나간 뒤에야 현 회장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가족참배에는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3남)과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8남),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현 회장은 애초 오전 10시 현대그룹 임직원들과 참배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가족참배가 늦어지자 일부러 10시27분께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별다른 언급을 피한 채 선영을 떠났다.
전날인 20일 저녁에도 두 사람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옛 자택에서 치러진 제사에 함께 참석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화해’의 조건으로 거론되는 현대상선 지분 문제에 대한 얘기가 오갔을지는 의문이다. 두 사람 모두 겨우 1시간 남짓 머무른데다, 워낙 많은 친인척들이 모인 탓이다. 현대가의 한 참석자는 “평소 제삿날엔 일상적인 인사 정도만 나눈다”고 전했고, 정의선 부회장도 21일 “(제삿날) 좋은 얘기 했습니다”라고만 말했다.
실제로 양쪽의 화해 분위기는 무르익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날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현대차한테서 현대상선 지분을 넘겨주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제안은 없었다”며 “(앞으로 경영권 분쟁 여부는) 현대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7.75%는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변수다.
앞서 지난 10일 추모사진전 개막식 때 정 회장과 현 회장은 반갑게 악수를 하긴 했지만, 이어 14일 열린 추모음악회 때는 현 회장이 “현대상선 지분이 넘어와야 한다”며 현대차 쪽에 ‘화해 노력’을 에둘러 촉구한 바 있다. 현대차 쪽은 지난 10일 정 회장이 던진 “(현대상선 지분으로 장난 치는) 그런 거 안 한다”는 발언 뒤엔 공식적인 언급 없이 현대그룹과는 선을 긋는 분위기다.
하남/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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