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환경·사회기여 등 중요한 투자 판단기준으로
국민연금 “정몽구·최태원회장 이사 반대” 의결권 행사
국민연금 “정몽구·최태원회장 이사 반대” 의결권 행사
사회책임경영 북돋는 투자 확산
#1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반대’. 국민연금공단이 현대차와 에스케이,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 행사한 의결권 내역을 지난 22일 공개했다. 두 사람이 계열사 부당지원, 분식회계 등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고 판단한 게 반대표를 던진 이유다.
#2 ‘현대차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다.’ 덴마크 공적연금(ATP)이 지난해 펴낸 보고서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보고서는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인에게 뿌렸는데도, 최고경영자(CEO)직을 유지하는 등 사태 재발을 방지할 내부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 덴마크 공적연금, “현대차 투자대상에서 제외” 국내 기업들을 바라보는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의 눈이 매서워지고 있다. 단기수익만이 아니라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환경 문제 등을 중요한 투자 판단기준으로 삼는 ‘사회책임투자(SRI)’가 국내에도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는 기업의 사회 책임경영(CSR) 강화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앞장선 곳은 국민연금이다.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은 최근 “주주권 행사와 투자에 이에스지(ESG) 원칙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지난 2009년 가입한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따라, 환경(E)·사회(S)·지배구조(G)를 엄밀히 따져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기업가치 훼손이나 주주 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자는 이사 선임을 반대할 수 있다’고 돼있는 세부기준 제27조에 충실히 따르는 등 주주로서 의결권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300조원이 넘는 적립금을 보유한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이런 태도는 기업들한테는 부담이다. 지난해 6월말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상장사만 대한항공, 포스코 등 100여개에 이른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비율은 2005년 2.7%에서 지난해 8.1%로 해마다 높아지는 중이다.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국내 대기업들도 이미 외국 기관투자가들의 ‘관심권’아래 들어섰다는 점이다. 세계 3대 연기금 운용회사인 에이피지(APG)자산운용은 ‘투자자 입장에서’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논란에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소식지를 통해 “삼성의 재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 회사는 무기제조업체인 한화와 풍산을 ‘투자 기피 기업’으로 지정하고, 한국타이어와 대우인터내셔널에 ‘인권 보호’를 요구한 곳이다. 이에 한국타이어는 직원들의 돌연사 문제에, 대우인터내셔널은 버마 가스 개발 현장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 투명한 정보공개가 급선무 하지만 국내 사회책임투자의 의견 표현방식은 외국에 견줘 여전히 소극적이다. 외국 연기금들은 의결권 행사 뿐만 아니라 주총 안건 제안이나 주주대표소송 등을 직접 하기도 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영국에서 기관투자자들의 행동지침을 새로 제정하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책임투자(SRI)펀드의 운용 실적도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사회책임투자 금액은 3조5000억원이었다.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비중도 전체 위탁투자금액(25조6000억원)의 9%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사회책임투자가 활성화되려면 국내 사정에 맞게 기업들의 사회책임경영 수준 등을 엄밀히 평가할 수 있는 독자적인 지표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는 2009년부터 사회책임투자 우수기업을 대상으로 사회책임투자(SRI)지수를 산출하고 있지만, 외국 지표를 본따온 것이다.
사회책임투자가 활성화하려면 기업들에게 투명한 정보 공개를 유도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기업들이 환경, 사회적 책임 등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해놓고 있다. 사회책임투자 컨설팅 회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이사는 “멕시코만 원유 유출사고로 비피(BP) 시가총액 1000억달러가 증발해버리는 등 환경, 지배구조 문제는 중요한 기업 리스크”라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이런 리스크를 지적하는 건 건전한 기업을 만들고 나아가 국민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착한 투자’가 ‘착한 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 국내에서도 변화의 싹은 움트기 시작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국내 대기업들도 이미 외국 기관투자가들의 ‘관심권’아래 들어섰다는 점이다. 세계 3대 연기금 운용회사인 에이피지(APG)자산운용은 ‘투자자 입장에서’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논란에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소식지를 통해 “삼성의 재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 회사는 무기제조업체인 한화와 풍산을 ‘투자 기피 기업’으로 지정하고, 한국타이어와 대우인터내셔널에 ‘인권 보호’를 요구한 곳이다. 이에 한국타이어는 직원들의 돌연사 문제에, 대우인터내셔널은 버마 가스 개발 현장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사회책임투자 평가지표 주요 평가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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