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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밀실협상·졸속번역·비준 속도전이 부른 화

등록 2011-03-29 21:01수정 2011-03-30 18:07

한-EU FTA 진행일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EU FTA 비준동의안 ‘2번이나 철회’ 왜?
조약절차법 없어 외부 견제 사실상 불가능
번역도 한달새 ‘뚝딱’…EU는 1년이나 걸려
한-미 FTA 함께 처리할 욕심 ‘밀어붙이기’
정부 수립 이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의안은 모두 1만619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부가 철회한 의안은 85건(0.8%)에 불과하다. 특히 조약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철회한 사례는 1964년 재정차관협정과 2011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등 단 두 건뿐이다. 물론 두 차례나 철회하는 것은 한-유럽연합 협정 말고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번에 정부가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다시 철회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약 비준 절차와 관련된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 조약절차법 부재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조약절차법이나 통상절차법이 없다. 헌법이 주요 조약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권을 인정하지만, 이를 구현할 조약절차법이 없으니까 ‘밀실협상’, ‘졸속협상’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자유무역협정같이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조약을 체결할 때도 통상관료가 밀실에서 협상하고 일방적으로 결과를 통보한다. 자유무역협정체결 규정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국회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외부 견제 없이 몇몇 엘리트 공무원이 1300쪽에 달하는 법전(자유무역협정)을 만드니까 문제가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 영어패권주의 통상관료들이 영문본이 진짜라는 ‘영어패권주의’에 빠져 있다.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와 체결해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은 양자 조약 321건 가운데 한글본 정본이 없는 게 31건에 이른다. 137건은 영어본이 우선하며,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처럼 한글본이 동등한 효력을 지닌 경우는 71건에 그친다.

국민이 법률생활을 영위하는 데 토대가 되는데도 한글본은 날림으로 번역한다. 2009년 10월15일 한-유럽연합 협정이 타결된 직후 한 달 만에 영문 협정문(본문 568쪽·양허표 609쪽)을 한글본(본문 691쪽·양허표 588쪽)으로 번역했다. 유럽연합 쪽은 21개 언어로 번역하는 데 1년이 걸렸다. 외부 전문기관의 번역비용 2억6000만원을 아끼려고 협상을 하던 부서에 ‘과외 일’로 떠맡겼다. 처음 번역 오류가 드러났을 때도 외교부는 전체적으로 협정문을 재검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지적된 오류만 달랑 고쳐서 일주일 만에 새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 무더기 번역 오류가 잇따라 발견됐지만 외교부는 비준동의안을 다시 철회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재발 방지 대책과 새 비준동의안을 내놓으라며 2월 임시국회에서 맞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번역 오류 160개를 추가로 지적한데다 뒤늦게 외부기관에 맡겨 재검독해 보니 협정문에서 다수의 오류가 또 발견됐다. 누더기 비준동의안을 고집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가 생겼고, 결국 외교부는 두 번째 철회를 단행하기로 했다. 통상협정의 법률검토·번역을 전담할 상설 조직을 통상법무과에 설치해 전문인력 7명을 보강하겠다는 번역 체계 개선책도 앞서 발표했다.

그러나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을 오는 7월1일에 잠정 발효한다는 정부의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유럽연합 쪽이 이미 국내 절차를 끝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가는 지렛대로서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한-유럽연합 협정이 발효되면 유럽연합과 경쟁관계인 미국 쪽이 자극을 받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처리할 가능성이 한층 커지고, 미국 의회가 협정을 비준하면 한나라당이 한-미 협정을 강행처리할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손익계산이 깔려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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