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유형별 오류 사례
‘이식’을 ‘수혈’로 잘못 옮기는 등 한심한 실수
외교부·관계부처·외부 전문기관 ‘보고도 몰라’
한-미·페루 협정문서도 오류 속출 ‘총체적 부실’
외교부·관계부처·외부 전문기관 ‘보고도 몰라’
한-미·페루 협정문서도 오류 속출 ‘총체적 부실’
정부는 4일 자체 확인 결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문에서 207개나 되는 번역 오류가 있음을 공식 확인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한글본 번역 오류에 대해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오류는 협정문 본문 32곳, 품목별 원산지 규정 64곳, 서비스 양허(개방)표 111곳 등 207곳에서 나왔고, 유형별로는 잘못된 번역 128건, 맞춤법 잘못 16건, 번역 누락 47건, 번역 첨가 12건, 고유명사 오기 4건 등이었다. 정부는 무려 1년5개월 동안이나 이를 방치했다.
■ 예상보다 많은 오류 207건은 애초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수치다. 앞서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의 지적으로 정부가 유럽연합 쪽과 고친 5건을 합치면 오류는 모두 212건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오류 사례는 초급영어 수준에 가까웠다. ‘이식’(transplant)을 ‘수혈’로 잘못 번역한 것을 비롯해 ‘자회사’(subsidiary)를 ‘현지법인’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경제개발협력기구’로, ‘올란드제도’(Aaland Islands)를 ‘아랜드섬’으로 잘못 번역했다.
맞춤법이 틀린 사례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자기계’와 ‘고아택재’는 각각 ‘공작기계’와 ‘광택재’의 오타였다. 특히 유럽연합 상품 양허표에는 ‘넙치류(레피도르홈부스종)’를 92차례, ‘즉시 포장’(immediate packings)을 83차례, ‘주’(note)를 45차례나 반복해 잘못 썼다. 외교부는 기존 양허표를 아예 없애고 새로운 양허표로 대체하기로 했다.
■ 책임자가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1300쪽 가까이를 번역하면서 전담 인력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번역과 검독은 외교부 협상팀이 가욋일로 맡았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도 2009년 7월13일에 타결된 뒤 같은 해 11월19일까지 몇몇 공무원이 분야별로 번역하고 검독했다. 같은 기간에 이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페루 등과의 협상을 병행했다.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였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 관계부처가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나 협정문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국회에 보고한데다, 협정문을 토대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국책 연구기관 10곳이 장밋빛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를 내놓았음에도 오류가 있다는 지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처음 번역 오류가 제기됐을 때도 외교부는 그 부분만 달랑 고쳐서 일주일 만에 새 비준동의안을 제출해 ‘2011년 7월1일 잠정 발효’를 밀어붙였다. 김종훈 본부장은 “초기대응이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번역 오류 160개를 지적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5일 기자회견을 열어 내용상 문제점까지 추가로 따져보기로 했다.
■ 한-미 FTA 오류도 줄줄이 더 큰 문제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만 고친다고 ‘총체적 부실’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검독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도 여러 오류가 이미 발견됐고, 지난달 21일 공식 서명한 한-페루 자유무역협정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되풀이되고 있다.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review’가 어느 곳에서는 행정적 심판 성격의 ‘재심’으로, 다른 곳에서는 권한이 모호한 ‘검토’로 다르게 번역됐고, 특허 분야에서 ‘(발명 등의) 완성’을 의미하는 ‘possess’는 ‘소유’로 오역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cause mistake’를 ‘실수를 야기하거나’라고 옮겼는데 이는 비전문가가 ‘오인’을 ‘실수’로 잘못 직역한 것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김종훈 본부장 “번역오류 죄송합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합동브리핑실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 번역 오류 문제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송구하다”며 사과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review’가 어느 곳에서는 행정적 심판 성격의 ‘재심’으로, 다른 곳에서는 권한이 모호한 ‘검토’로 다르게 번역됐고, 특허 분야에서 ‘(발명 등의) 완성’을 의미하는 ‘possess’는 ‘소유’로 오역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cause mistake’를 ‘실수를 야기하거나’라고 옮겼는데 이는 비전문가가 ‘오인’을 ‘실수’로 잘못 직역한 것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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