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4일 밤 국회 본회의를 열어 민주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려 하자 이정희 대표 등 민주노동당 의원 6명과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국회의장석에 올라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한다는 손팻말을 펴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유럽에 시장 빼앗긴다”
미, 의회압박 명분 삼을듯
미의회서 먼저 통과되면
한국도 강행할 근거얻어
미, 의회압박 명분 삼을듯
미의회서 먼저 통과되면
한국도 강행할 근거얻어
정부가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는 ‘7월1일 잠정 발효’를 앞세워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속도를 내는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가는 지렛대로 이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한-유럽연합 협정이 발효되면 유럽과 경쟁관계인 미국 쪽이 자극을 받아 한-미 협정을 처리할 가능성이 한층 커지고, 미국 의회가 협정을 먼저 비준하면 여당이 ‘한-미 동맹’을 내세워 비준동의안을 국회에서 강행처리할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4일 전체회의를 열어 번역 오류가 드러난 한-미 자유무역협정 철회동의안을 의결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타결한 재협상 결과까지 포함한 새로운 비준동의안을 제출받기로 했다. 두 나라의 행정부가 2012년 총선·대선 이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발효한다는 ‘시나리오’를 짜놓고 양쪽 입법부를 차근차근 압박하며 비준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이다.
■ 7월1일 잠정발효 집착 정부는 한-유럽연합 협정을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 근거로 ‘7월1일 잠정발효’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는 통상관료의 구두 합의일 뿐이다.
잠정발효는 유럽연합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다.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려면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이 각각 비준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러면 족히 2~3년은 걸린다. 이에 27개 회원국 외교장관으로 구성된 유럽연합 외교이사회가 자유무역협정의 90%를 발효할 수 있도록 하는 잠정발효 제도를 마련했다. 유럽연합에서는 외교이사회가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기구라서 가능한 일이다.
외교이사회는 지난해 9월16일 한-유럽연합 협정을 2011년 7월1일에 잠정발효한다고 이미 결정해 놓았다. 이 과정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도 7월1일에 발효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국회 입법권 침해라는 비판에 구속력 없는 합의였다고 뒤늦게 한발 물러섰지만 정부는 7월1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결국 잠정발효 약속에 발목이 잡혀 최종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한 달 만에 합의처리를 밀어붙인 셈이다.
■ 의회 비준 압박 심해질듯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발효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미국 쪽에서 이를 의회 압박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짐 맥더모트(민주·워싱턴) 연방 하원의원은 지난달 28일 미국 상무부 누리집에 한국 국회가 한-유럽연합 협정 비준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고 밝힌 뒤 “미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하지 않은 탓에 우리와 파트너가 되고 싶어하는 한국 기업에 ‘유럽연합으로 가서 그들과만 무역하라’고 말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함께 방한한 게리 로크 미 상무장관도 지난달 27일 한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지난해 (재협상) 결과는 미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며 미국이 먼저 한-미 협정을 비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국회도 미 의회의 승인을 받는 것을 보고 비준절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 의회를 압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처리하겠다는 각본이 착착 진행돼 가고 있는 셈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