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촛불’에 데인 학습효과 분석
한국정부 “쇠고기 지켰다” 무색해질 듯
한국정부 “쇠고기 지켰다” 무색해질 듯
‘선비준 후협상’ 의도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한 뒤 한국의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겠다고 공식화함에 따라, 국회가 한-미 협정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면 월령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시장에 다시 상륙할 가능성이 커졌다. 자유무역협정과 별개 사안이라던 우리 정부의 기존 설명과 달리, 두 나라의 통상당국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 확대 문제를 지속적으로 협의해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전제조건으로 한국의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내걸었다. 이에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첫 방미 때 두 나라는 쇠고기 협상을 벌여 월령 구분 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하고, 검역주권도 미국에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촛불시위가 불붙었고 두 나라는 재협상에 돌입해 미국 육류 수출업자와 한국 수입업자가 자율규제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그래서 미국은 애초 합의대로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는 지난 3월 ‘2011년도 나라별 무역장벽보고서’와 ‘2011년도 위생검역보고서’를 내어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 시장에 제한 없이 진입하도록 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일정 정도에 도달하면’ 등의 몇가지 전제조건을 달아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한국 정부에 요구할 것이라는 미국 의회 보고서도 3월에 발간된 바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본격적인 쇠고기 협상을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뒤로 늦춘 것은 2008년 4월의 ‘학습효과’로 분석된다. 두 나라가 쇠고기 시장 개방을 덜컥 먼저 합의했다가 비판 여론이 몰아치면 우리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타결된 한-미 협정의 자동차 분야 재협상 결과는 미국 쪽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열매다. 재협상에서 두 나라는 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2.5%)를 4년간 유지하고 미국의 안전기준을 통과하면 우리나라에서 바로 판매할 수 있는 미국산 자동차 수량도 기존 6000대에서 2만5000대로 4배나 늘렸다.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을 조금 늦추더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하는 것이 미국 쪽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재협상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며 미국의 압박이 있었지만 “쇠고기 시장을 지켰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미 무역대표부가 ‘협정 발효 뒤 쇠고기 협상’을 공식화함에 따라 이는 ‘정치쇼’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쪽이 쇠고기 시장 수입 전면 개방을 위한 협상을 요청하면 우리 정부는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수입위생조건 제25조을 보면, 한-미 두 나라 가운데 한쪽이 수입위생조건의 적용 혹은 해석의 문제에 관해 협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고, 이 요청이 제기되면 7일 안에 상대방이 이에 응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대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면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구체적인 심의 절차나 방법 등에 대한 규정이 없어 졸속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