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17일 입찰장벽 낮춘 매각방안 결정키로
산은, 인수 유력…“공적자금 회수 어려워” 불만도
산은, 인수 유력…“공적자금 회수 어려워” 불만도
정부가 우리금융그룹의 민영화에 속도를 내면서 금융그룹들의 인수전 참여를 기대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산은금융그룹의 들러리만 서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17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를 열어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중인 우리금융 지분(56.97%)을 매각해 민영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결정한다고 11일 밝혔다. 공자위는 산은금융 등 다른 금융지주사가 매수자로 나설 수 있도록 입찰 참여 장벽을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은 금융지주사가 다른 금융지주사를 소유하려면 지분 95% 이상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자위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지주사를 인수할 때에는 예외로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금융 민영화를 논의할 때 누구는 안 되고, 누구는 빼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문을 열어놓고 가자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그룹과 케이비(KB)금융그룹 등이 우리금융 인수전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보낸 것이다.
하지만 산은금융을 뺀 나머지 금융그룹들은 떨떠름한 반응이다. 현 정부 실세인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우리금융 인수에 들러리로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케이비금융 관계자는 “어윤대 회장이 ‘우리금융 인수와 관련해 어떠한 검토도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며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우리금융 인수를 아직까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비금융은 유보금과 자사주 매각 등으로 5조원 이상의 실탄을 동원할 수 있지만, 시너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인수전에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신한금융 고위 관계자도 “조흥은행과 엘지(LG)카드 등 대형 기업을 인수하면서 약 4조원을 차입했기 때문에 우리금융을 인수할 여력이 없다”며 “한동우 회장이 ‘인수전에 뛰어들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조흥은행 인수 당시 차입금은 전액 상환했지만, 엘지카드 인수 당시 발행한 상환우선주 3조7500억원을 내년 1월 전액 상환해야 한다.
독자적인 민영화를 추진해온 우리금융은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다. 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는 “하나금융에 이어 이젠 산은금융까지 나서는 거냐”며 “두 금융사 모두 우리금융을 인수할 경우 공적자금을 제대로 회수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자사주 매입과 재무적 투자자 확보를 통해 10조원의 실탄을 마련 중이다.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 중인 하나금융그룹은 인수전에 뛰어들지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하지만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우리금융 인수로 방향을 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나금융은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5조원 가량의 실탄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산은금융은 당국의 민영화 속도내기를 반기고 있다. 산은금융 관계자는 “산은금융과 우리금융이 합치면 시너지가 크게 날 수 있다”며 “특히 증권 부문이 국내에서 부동의 1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우리금융 인수전에 발 담그기를 싫어하는 게 속내지만, 정부가 저축은행 이슈를 다른 곳에 돌리고 흥행 차원에서 인수전을 몰아붙인다면 어쩔 수 없이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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