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 0.92% ‘사상최저’ 불구 은행이자엔 3배 육박
집값상승 기대도 꺾여…임대차중 월세비중 급증
집값상승 기대도 꺾여…임대차중 월세비중 급증
김아무개(39)씨는 최근 도심에 가까운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명륜동 아남아파트 단지 내 중개업소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627가구 규모인 이 단지에 전세 매물은 단 한 채도 없고 월세 매물만 2~3건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방 3개짜리 전용 84㎡형의 전세 시세는 3억5000만원인데 월세로 나온 84㎡형은 보증금 1억원에 월세금 150만원으로 월세 이율은 0.6%였다. 현지 공인중개사는 “올 들어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 기존의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월세 이율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이율이 크게 떨어지는 한편 월세 계약의 비중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6일 케이비(KB)국민은행의 ‘5월 중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를 보면, 지난달 전국 주택의 월세 이율은 0.92%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0.04%포인트, 올해 1월에 견줘서는 0.02%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 이율은 지난 1995년 1월 첫 조사(1.01%)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주택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신규 임대차 계약에서 전세의 비중은 54.2%에 이르고, 보증부 월세(보증금과 월세를 모두 지불하는 방식, ‘반전세’라고도 함)가 43.3%. 순수월세가 2.5%를 각각 차지했다. 이 가운데 보증부 월세의 비중은 지난해 5월 41. 4%에 견줘 1.9%포인트 높아진 반면 전세 비중은 같은 기간 2.6%포인트 낮아졌다.
이처럼 월세 이율이 떨어지는 현상은 월세 공급이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고 부동산업계는 분석한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시장 침체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흐름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김규정 부동산114 본부장은 “기존에 전세를 놓고 있는 집주인이라도 수익이 높은 월세로 돌리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꺾이면서 전세를 끼고 주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대신 소형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으로 월세를 놓아 안정적 수익을 얻으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전셋값이 급등하는 현실에서 월세 주택의 가격을 뜻하는 월세 이율이 떨어지는 것은 세입자에게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전세의 대안으로 월세를 선택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다. 현재의 월세 평균 이율인 0.92%는 연이율로 따지면 11.04%으로, 예컨대 1억원의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돌렸을 경우 연 1104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4.1~4.3%)에 견줘도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월세 계약이 더 보편화되면서 월세 이율은 좀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월세 가격이 떨어지는 반대급부로 전셋값 상승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택시장에 전세 수요가 여전히 많은데도 월세 주택 공급만 늘고 전셋집 공급이 빠르게 줄어들면 전셋값은 큰 폭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방안에 ‘임차인의 계약갱신 청구권’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2년인 임대차 계약기간을 세입자가 원할 경우 1회에 한해 연장하게 되면 임차주택 계약 형태가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속도가 다소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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