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전체에 부정부패…다른 곳도 똑같다” 밝혀
“직원 닦달해서 부정시키는게 제일 나빠” 강조도
“직원 닦달해서 부정시키는게 제일 나빠” 강조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8일 삼성테크윈 임직원 비리를 문제 삼아 사장을 전격 경질한 데 이어 9일에는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고 말하는 등 비리 척결 의지를 잇따라 밝히고 있다.
이 회장은 9일 출근길에 “삼성테크윈에서 향응, 뇌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는 것 같다”며 “남 얘기 하면 뭣하지만, 다른 곳도 똑같다”고 덧붙였다. 또 이 회장은 “과거 10년간 한국이 조금 잘 되고 안심이 되니까 부정부패 현상이 나타나서 더 걱정이 된다”며 “요새 바짝 이 문제를 챙겨보고 있다”고 밝혔다. “향응, 뇌물도 있지만, 부하 직원들 닦달해서 부정을 시키는 게 제일 나쁘다”고 강조했다. 앞서 삼성테크윈은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장 경질에 이어 임원 8명을 포함해 80여명을 해고하거나 징계했다.
이 회장은 삼성테크윈 임직원들이 향응과 뇌물을 받았다는 것인지, 줬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만약 줬다면, 삼성테크윈이 군에 대포나 장갑차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감사원 감사 및 검찰 수사 대상이다. 삼성 관계자는 “회장이 ‘자폭’할 이유가 있느냐”며 “회장이 말한 향응과 뇌물은 삼성테크윈 임직원이 협력업체한테 받았다는 것이고, 이는 비리 혐의로 징계받은 삼성테크윈 직원이 대부분 하위직이라는 데서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회장이 말한 대로라면 부정과 비리가 삼성그룹 곳곳에 퍼져 있고, 또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철저한 감사로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기 어렵다는 삼성의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국내영업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은 뒤 장부를 살펴보니 하나도 맞지 않아 바로 감사를 청구한 일이 있다”며 “관리의 삼성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부정과 비리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다. 엑스파일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삼성 자체가 정관계를 대상으로 가장 활발한 로비를 펼쳐온 기업이라는 점도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리 척결을 강조하는 것일까. 삼성 관계자들의 말로는 이 회장은 ‘삼성특검’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약화된 조직 장악력을 회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경영진단팀을 앞세워 조직 기강을 다잡는 방법으로 제2의 이건희 시대를 열려고 한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과 ‘공정사회’ 주문에 대한 ‘다른 방식’의 화답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소 협력업체들한테 향응과 뇌물을 받은 임직원들을 일벌백계함으로써 “삼성은 중소 협력업체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테크윈을 제물로 삼아 방위산업체를 좋지 않게 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을 바꾸려고 한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한 군사평론가는 “케이-9 자주포 등의 불량과 잇따라 터지는 군수품 납품 비리에 방산업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이 좋지 않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삼성테크윈을 시범케이스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 내부에선 찬바람이 불고 있다. 머지않아 ‘사정’의 칼날이 들이닥칠 것으로 예상하며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삼성은 “감사팀을 강화해 비리를 뿌리뽑으라”는 회장 지시에 따라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을 강화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 안에선 어느 계열사가 다음 차례이고, 어느 계열사 사장이 ‘정리 대상’이란 말이 돌고 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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