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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회장님 말씀’은 ‘사고’일까 ‘작전’일까

등록 2011-06-14 16:23수정 2011-06-14 17:56

“출근이 뉴스가 되냐”지만 출퇴근 때마다 출입기자들은 삼성 사옥 앞에서 ‘뻗치기’
회장님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아닐 때 걷는 게 다른데…
14일 아침 7시50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현관.

건물 보안을 맡고 있는 직원들이 사용하는 무전기 소리가 요란해지는가 싶더니, 조용하던 현관 앞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현관 밖 ‘도어맨’ 서너명이 정렬해 차렷 자세를 취하고, 이후부터 계열사 사장과 임원이 타고 오는 차는 출구 지점으로 빠져 섰다. 이어 현관문이 활짝 열려 고정되고, 현관문부터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보안 검색대까지 ‘잡인’의 접근을 막는 빨간색 줄이 쳐졌다.

 

1인 시위자가 마이바흐 승용차 앞을 막아서다  

 때맞춰 현관 1층을 가로질러 쳐진 줄 밖으로 삼성그룹 출입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방송 카메라도 여러 대 설치됐다. 줄 안쪽으로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과 삼성전자 홍보실 직원들이 기자들을 막아섰다. 잠시 뒤, 이인용 부사장이 나와 취재진 사이로 섞였다. 3분여 뒤, 김순택 미래전략실장과 비서팀장이 사무실 쪽에서 나와 1층에 몰려 있는 기자들과 커뮤니케이션팀 임직원들을 향해 미소 띤 얼굴로 목례를 하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이어 현관 밖으로 에쿠스 승용차가 들어와 서더니 이건희 회장이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내려, 김 실장과 나란히 섰다.

같은 시간, 현관 안에서는 커뮤니케이션팀 직원이 취재진을 향해 “오늘은 제발 회장님 들어가실 때 큰소리로 질문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위에서 오늘은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오늘도 큰소리로 질문하면, 다음부터는 회장 출근 때 기자들의 현관 출입을 차단하겠다”고 농담 섞인 엄포를 놓기도 했다.

갑자기 밖에 소란해졌다. 전국철거민연합회 1인 시위자가 이 회장 차가 들어올 자리로 들어선 것이다. 현장 정리를 맡고 있는 에스원 직원과 시위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에스원 직원이 누군가의 무전을 받나 싶더니, 갑자기 장정 너댓명이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위자를 번쩍 들고 길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이건희 전 회장이 출근을 시작하면서 서초동 삼성 사옥 앞은 삼성 출입기자들의 출근처가 되었다. <b>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b>
이건희 전 회장이 출근을 시작하면서 서초동 삼성 사옥 앞은 삼성 출입기자들의 출근처가 되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고마워라 “아침식사 하러 갑니다” 

이렇게 현장 정리가 끝난 뒤 3분 정도 지났을까, 마이바흐 승용차가 경호용 차를 뒤에 달고 미끄러지듯 사옥 앞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현관 안팎이 조용해지고, 삼성 임직원들이 옷매무새를 만지고 자세를 바로 한다. 비서가 차문을 열자, 이건희 회장이 차에 내려 현관 안으로 발길을 옮긴다. 김순택 실장, 이재용 사장, 비서팀장이 뒤를 따랐다. 이 회장은 출입기자들 앞에 처진 줄 저편으로 1층 현관과 보안검색대를 지나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누군가가 “들어가셨으니 올라가시죠”라고 외쳤다. 이 말을 신호로 꼼짝 않던 삼성 임직원들이 분주하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이고, 취재수첩과 녹음기를 들고 이 회장의 ‘한말씀’을 기대했던 기자들도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아침식사 하러 갑니다.” 현장에 나와 있던 커뮤니케이션팀 직원이 기자들을 향해 날린 서비스 멘트다.

 현관 밖으로 나오자, 조금 전 장정들에게 번쩍 들려갔던 전철연 시위자가 나타나 분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친다. 구호 소리는 큰 길 건너편과 강남역 3번 출구 쪽에서도 들려온다. “삼성전자는, 삼성전자는, 지펠냉장고, 지펠냉장고, 중소기업, 중소기업, 부품대금을, 부품대금을 지급하라.”

수요일 오후만 되면 “내일 이 회장 출근할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4월21일 서초사옥 집무실로 첫 출근한 이후 매주 화·목요일 아침마다 현관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오후 2~3시 사이 이 회장 퇴근 때도 연출된다. 이 회장의 출근 횟수가 늘어나면서 모여드는 기자들과 방송카메라가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회장 집무실은 이 건물 42층에 있다.

이 회장 집무실 출근 초기에는 언제 출근하고 퇴근할지 몰라, 기자들이 매일 꼭두새벽부터 현관에서 이 회장이 출근하기를 기다리고, 이 회장이 출근한 날에는 점심까지 거르며 퇴근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이 회장의 출근일이 화요일과 목요일로 고정되고, 출·퇴근 시간도 각각 오전 8시와 오후 2~3시로 맞춰지면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삼성 출입기자들에게 이 회장의 동선은 사전에 꼭 챙겨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다. 출근과 퇴근 시간을 챙겨 현관에서 기다리고, 출국과 입국 시간을 알아내 공항 입국장과 출국장을 지키는 게 삼성 출입기자들의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다. 호암상 시상식과 전경련 회장단 회의 때도 참석 여부를 챙기고, 길목을 지켜야 한다. 이른바 ‘이명박 정부 낙제점’ 발언과 초과이익공유제, 연기금 주주권 행사 등에 대한 그의 발언이 모두 이런 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출근길에는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주요 사안에 대한 이 회장의 발언 역시 기자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따른 ‘사고’라는 설과,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의 치밀한 ‘작전’ 아래 이뤄진, 준비된 것이란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만 되면 삼성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내일 이 회장 출근할까”란 얘기가 오간다. 당일 아침 서초사옥 1층에 모인 기자들과 홍보실 임직원들도 “오늘 이 회장 출근하실까” “언제쯤 도착하신대”란 말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 이 회장이 집을 떠나면서 출근 사실을 통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자들이 새벽부터 기다렸다가 허탕을 치고, 미래전략실 임원들이 조찬 모임에 갔다가 이 회장 출근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회사로 들어오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정제된 말로, 은유로 때로는 농담으로 

 지난 5월24일, 화요일인데 이 회장이 출근하지 않았다. 이 회장이 출근할 줄 알고 기자들이 현관에서 기다렸다. 오전 7시40분쯤,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이 “오늘은 회장님이 출근하지 않는다”고 기자실에 알렸다.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스위스 로잔을 갔다온 여독이 덜 풀려서 집에서 쉰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통보를 받기 전 현관에 나가 있다가 허탕을 쳤다. 이날 일부 언론은 이 회장 출근 안 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 달 전, 국내 모든 언론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서초사옥 집무실 출근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일부 기자들이 “회장이 집무실에 출근한 게 기사가 되느냐”고 비아냥대기도 했으나, 당사자들도 기사를 썼다. 이후 ‘두 번째 출근’, ‘세 번째 출근’, ‘화·목요일마다 정기 출근’이란 기사가 나오더니, 급기야 5월21일에는 ‘이건희 회장 출근 안 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이틀 뒤 24일 이 회장이 출근하자, 언론에는 ‘이건희 회장 출근 재개’라는 기사가 떴다.

 이 회장이 언론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현관에 들어서서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띤 얼굴로 취재진을 향해 인사를 한다. 기자들이 질문을 하면, 취재진 쪽으로 다가선다. 기자들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그거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이 때로는 정제된 말로, 때로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때로는 농담투로 답을 한다. 초과이익공유제 얘기가 나왔을 때는 “교과서에도 없는~”, 연기금 주주권 행사 때는 “공개적인 것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 애플의 특허침해 소송에는 “못이 튀어나오면 정을 맞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왜 출근했냐는 물음에 “할 일이 없어서”, 자주 출근할 거냐는 물음에 “기자님들이 보고 싶다면”이라고 농담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없을 때는, 기자들과 먼 쪽으로 걸어간다.

 이 회장이 뭘 타고 출근하는지도 관심거리다. 이 회장은 출근 첫날부터 한동안은 마이바흐를 탔으나, 언제부터인가 바이마흐와 롤스로이스를 번갈아 타고 있다. 삼성 쪽은 “회장님 기분에 따라 타고 오신다”고 설명했다.

직원들, 우르르 구경하고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이 회장 출근 및 퇴근 길에는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 사장은 이 회장 출근 및 퇴근 때 김순택 미래전략실장과 함께 회장을 영접하고 뒤를 따라 들어간다. 이 사장은 미소 띤 얼굴로 묵묵히 회장 뒤를 따른다. 이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얘기를 나눌 때, 일부 기자들이 이 사장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때마다 이 사장은 미소 띤 얼굴로 “회장님께 물어보라”고 기자들을 이 회장 쪽으로 떼민다.

 이 회장이 매주 화·목요일에 출근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요즘은 이 회장을 보기 위해 그 시간에 현관으로 내려오는 삼성 계열사 직원들도 많다. 다들 이 회장을 가까이서 뵙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한 계열사 홍보실 여직원은 스마트폰으로 이 회장 사진을 찍어 배경화면으로 깔고, 인화해서 수첩에 넣어 갖고 다닌다. 이 직원은 “정말 인자하고 잘 생기기지 않았냐. 처음 보는데 머리 뒤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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