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섭 변리사(가운데)와 참여연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로 감사원 앞에서 외통부의 국제협정 이행·추진 과정의 직무태만 및 법령위반사실에 대한 감사청구서를 접수하기에 앞서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중소상인들, 감사청구…“잠정발효서 제외해야”
외교부, 비준동의 뒤 “임의 선택 못해” 말바꿔
외교부, 비준동의 뒤 “임의 선택 못해” 말바꿔
22일 오후 2시 서울 삼청동 감사원 앞. 소상공인 10여명이 감사원에 외교통상부의 직무 태만과 법령 위반 등에 대한 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장은 “세계무역기구(WTO)협정 특별법을 보면, 국내 피해가 클 경우 협정을 수정하기 위한 협상을 하도록 돼 있는데 외교부는 이러한 책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협상 중요사항을 이해당사자인 소상공인들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상공인들이 외교부를 겨냥해 행동에 나선 배경엔 정부가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과 충돌하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다음달부터 잠정 발효하려는 데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는 전통시장 500m 이내에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에스에스엠 규제법을 통과시켰는데,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은 유통시장을 유럽연합 측에 조건없이 모두 개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유럽연합 협정이 발효되면, 국내 소상공인을 보호할 법안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2일 입점 제한 범위를 기존의 ‘500m 이내’에서 ‘1㎞ 이내’로 확대하고, 법안의 유효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에스에스엠 규제법과 충돌하는 한-유럽연합 협정 조항은 7월1일 잠정 발효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잠정 발효란 유럽연합과 맺은 자유무역협정에만 있는 제도인데, 27개 회원국이 각각 국내 절차를 끝내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 유럽연합 외교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일부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90%만 우선 발효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지난해 9월 외교이사회 결의로 지적재산권 행사 집행 관련 등 17개 조항을 잠정 발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소상공인들이 특별법을 만들어 에스에스엠 규제법을 잠정 발효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을 펴는 근거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 등 야당의원 18명은 지난 15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특별법을 발의한 상태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외교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한쪽이 잠정발효 제외 대상을 임의로 선택할 수 없다”며 “유럽연합이 이의를 제기하면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동의를 앞두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비준동의안을 우선 처리한 뒤 에스에스엠 규제법을 실효성 있게 운영하고, 유럽연합측과 협상해 관련 한-유럽연합 협정문 내용을 개정하겠다”던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기획실장은 “협정문을 개정한다고 약속했던 외교부가 이제는 협정에 따라 SSM 규제법 충돌법안을 잠정 발효에서 제외해달라는 요구를 반대한다”며 “유통법을 아무리 강화해도 유럽연합이 문제를 제기하면 무용지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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