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업체들 비판 목소리
가격인하 경쟁에 실적악화
납품단가 인하 요구 잇따라
가격인하 경쟁에 실적악화
납품단가 인하 요구 잇따라
세계적인 반도체 및 액정화면(LCD) 패널 업계의 가격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삼성전자·엘지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이 ‘고통분담’을 명분으로 협력업체들에게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협력업체 쪽에서 “이익 배분에는 인색하더니, 고통 분담에는 적극적”이란 볼멘소리가 나온다.
23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최근 들어 반도체, 액정화면 패널, 텔레비전, 휴대전화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 엘지전자, 삼성에스디아이, 엘지디스플레이 등이 협력업체들에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결같이 “대기업이 어려워지면 협력업체들이 설 자리도 줄어드는 점을 살펴 고통 분담을 하자”는 논리를 편다. 엘시디 부품을 대는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업체들이 타깃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및 엘시디 패널 가격이 장기간 약세를 보이고 있어 이런 상황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해 5월 2.72달러였던 디(D)램(DDR3 1Gb 128Mx8 1066MHz 기준) 가격이 지금은 1달러를 밑돌고 있다. 엘시디 패널 가격(40~42인치 엘이디 기준) 역시 지난해 1월 500달러에서 지금은 317달러까지 떨어졌다. 대기업이 이런 부담을 떠넘기는 가장 손쉬운 원가절감 방법은 협력업체들의 납품단가를 깎는 것이다. 대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는 한 협력업체 사장은 “지난해 말 단가 조정을 했는데 최근 추가 인하 협의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들이 요즘 받는 납품 단가 인하 요구는 정기적인 단가 인하와 별도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깎아준 쪽의 부담이 더 크다. 대기업들은 평소 반기나 분기 내지 새로운 생산라인 건설, 신제품 개발 때 납품단가 조정을 한다. 일반적으로 연간 몇 %씩 깎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새로 건설되는 생산라인이나 신제품에 이전에 공급하던 장비나 부품을 그대로 납품할 때는 추가 20~30%씩 깎기도 한다.
협력업체들은 영업이익율이 높은 게 ‘적발’돼 납품단가를 깎이기도 한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실적이 좋아졌다고 언론에 소개되면 바로 ‘줄자’를 갖고 달려든다”며 “따라서 영업이익율이 두자릿수를 넘거나 잘 나가는 업체로 언론에 소개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익을 대기업에게 넘겨주느니 차라리 직원들에게 쓰겠다면서 예정에 없던 성과급을 왕창 지급하기도 한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은 “원가 절감 및 상생 차원에서 납품 단가 조정은 늘 있는 일”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무리하게 깎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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