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화 제조업체들이 밀집해있는 서울 성수동에 지난 17일 문을 연 유통매장 ‘서울 성수 수제화타운(SSST)’을 찾은 손님들이 구두를 둘러보고 있다. 수제화업체 14곳이 모여 설립한 이 매장에서는 백화점 판매수수료율 등의 가격 거품을 걷어내고,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직접 구두를 판매한다.
‘백화점 횡포’ 없는 대안매장
“2009년 현대백화점에 입점했다가 1년 만에 그만뒀다. 제조원가 5만원짜리 신발 한 켤레를 25만원에 파는데도 판매수수료율이 워낙 높아서 남는 게 없었다. 유통업이 제조업 위에 군림하는 탓이다.”(ㅁ수제화업체 사장)
“지난 1월 신세계, 롯데백화점 멀티 편집매장에 들어갔는데, 수지타산이 도저히 안 맞더라. 우린 그나마 독자매장이 있지만, 판로 개척 못해 문닫는 업체들도 많다.”(ㄹ수제화업체 사장)
대형백화점이 판매수수료 명목으로 매출액의 30~40%가량을 떼가는 관행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한국패션협회와 공동으로 백화점 판매수수료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평균수수료율이 29.3%나 됐다. 매장을 빌려준 대가로 매출의 3분의1가량을 고스란히 백화점에 ‘상납’하고 있는 셈이다. 홈쇼핑이나 대형아울렛의 판매수수료율도 20~30%대로 만만치않다. 홈쇼핑업체에 주문자상표생산방식(OEM)으로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한 중소업체 사장은 “25%가량을 떼가는데, 그 가격 부담은 결국 소비자가 떠안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판매수수료율이 원망스러운 건 직접 백화점에 매장을 낸 업체만이 아니다. 소다·미소페 등 백화점에 입점한 유명 구두브랜드는 판매물량의 30~50%가량을 하청업체에 맡긴다. 한 구두 하청업체 사장은 “원청도 백화점 수수료율을 떼고 하청한테 주다보니, 20만원이 넘는 구두 판매가격에서 우리한테 남는 마진은 몇천원대가 고작”이라고 푸념했다.
이런 가운데 대형백화점 대신 아예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려고 나선 중소업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수제화 제조업체 350여곳이 밀집해있는 서울 성수동에는 지난 17일 ‘서울 성수 수제화타운(SSST)’이라는 이름의 판매 매장이 25평 남짓한 규모로 문을 열었다. 14개 업체가 백화점에서 팔던 ‘가격 거품’을 빼고 소비자와 직거래를 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운영자금은 업체들이 공동출자했고, 성동구청에서 마을기업 인증을 받아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도 보탰다. 성동제화사업주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한영 ‘엘리자벳’ 사장은 “왜곡된 유통 마진을 빼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도 최근 ‘중소기업 물건만 파는 전문백화점’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지난 1995년 중소기업진흥공단이 1086억원을 출자하고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 목동의 ‘행복한세상 백화점’이 성공모델이다. 중소기업 물건만 파는 이 백화점의 판매수수료율은 8% 수준이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전국 유휴지를 타당성 조사한 뒤, 행복한세상처럼 자생력있게 운영하는 중소기업 전문백화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임상훈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중소영세업체들이 백화점에 입점해 유통마진 명목으로 돈을 뜯기는 대신에, 이탈리아 협동조합들처럼 ‘공공재’ 형태의 유통매장을 설립하고 기술향상 등에 협업하는 건 뜻깊은 시도”라며 “정부가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백화점 판매수수료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고, 중기중앙회도 판매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추진중이다. 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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