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발효 이후] 통상분쟁 불씨 곳곳에
유럽산 보호대상 162개
미·호주 등 민감한 반응
EU는 ‘준수해달라’ 압박 SSM규제법도 협정과 충돌 잠정 발효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은 여러 곳에서 통상 마찰의 불씨를 품고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국내법과 자유무역협정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데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협정 발효로 도입된 ‘지리적 표시제’(GI)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한-유럽연합 협정의 지리적 표시제 관련 조항을 해석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예컨대 미국의 치즈 생산 업체가 자사 상품에 ‘모차렐라’라는 명칭을 넣어 한국에 수출하면 유럽연합이 지리적 표시제 위반이라고 제재 조처를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리적 표시제란 ‘스카치 위스키’나 ‘코냑’처럼 지명을 딴 상품은 그 자체로 지적재산권을 인정해주는 것을 말한다. 한-유럽연합 협정 발효로 한국은 ‘보성녹차’ 등 64개, 유럽연합은 ‘모차렐라 디 부팔라’ 등 162개의 지리적 표시를 보호받는다. 정부는 론 커크 대표에게 회신을 보내 “모차렐라 같은 명칭은 대한민국에서 치즈 유형을 표시하는 일반 명칭이라서 협정 발효로 인해 사용이 제한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또 “우리나라가 에프티에이를 통해 지리적 표시제를 도입하거나 추가할 때 미국 등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토마시 코즈워프스키 주한 유럽연합대표부 대사는 지난 30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두 나라의 서신을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에프티에이는 법적 기준이고 지리적 표시제는 이에 따라 존재하는 만큼 한국 정부가 에프티에이 합의를 잘 따라주기 바란다”며 표시제 준수를 압박했다.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는 유통법과 상생법도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발효로 위태로워졌다. 국회는 전통시장 ‘1㎞ 이내’에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관련 법을 통과시켰지만 한-유럽연합 협정은 유통시장을 유럽연합 쪽에 조건 없이 모두 개방하도록 하고 있다. 두 개의 법률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협정이 발효되면 유럽연합 쪽과 협상을 통해 충돌하는 한-유럽연합 협정문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을 표현한 것이다. 협정 발효 뒤에는 유럽연합이 합의하지 않는 한 협정문을 원천적으로 개정할 수 없다. 유럽연합의 헌법에 해당하는 ‘리스본 조약’에 따르면 유럽의회와 27개 회원국 의회의 동의까지 필요하다. 유럽연합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협정문 개정 약속을 정부가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유럽연합대표부는 “현재로서는 코멘트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지난해 8월에는 김 본부장에게 서한을 보내 “중요한 (유통) 시장을 닫아버리는 것은 명실공히 자유무역협정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친환경 학교급식도 논란거리다. 한-유럽연합 협정을 보면 학교급식용 음식 자재를 구입할 때 유럽연합은 유럽산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하게 돼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급식 프로그램의 증진을 위한 정부 조달에는 (협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둔 것과 견줘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이다. 정부는 별다른 대책 마련 없이 “유럽연합 쪽이 양해해줄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미·호주 등 민감한 반응
EU는 ‘준수해달라’ 압박 SSM규제법도 협정과 충돌 잠정 발효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은 여러 곳에서 통상 마찰의 불씨를 품고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국내법과 자유무역협정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데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협정 발효로 도입된 ‘지리적 표시제’(GI)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한-유럽연합 협정의 지리적 표시제 관련 조항을 해석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예컨대 미국의 치즈 생산 업체가 자사 상품에 ‘모차렐라’라는 명칭을 넣어 한국에 수출하면 유럽연합이 지리적 표시제 위반이라고 제재 조처를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리적 표시제란 ‘스카치 위스키’나 ‘코냑’처럼 지명을 딴 상품은 그 자체로 지적재산권을 인정해주는 것을 말한다. 한-유럽연합 협정 발효로 한국은 ‘보성녹차’ 등 64개, 유럽연합은 ‘모차렐라 디 부팔라’ 등 162개의 지리적 표시를 보호받는다. 정부는 론 커크 대표에게 회신을 보내 “모차렐라 같은 명칭은 대한민국에서 치즈 유형을 표시하는 일반 명칭이라서 협정 발효로 인해 사용이 제한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또 “우리나라가 에프티에이를 통해 지리적 표시제를 도입하거나 추가할 때 미국 등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토마시 코즈워프스키 주한 유럽연합대표부 대사는 지난 30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두 나라의 서신을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에프티에이는 법적 기준이고 지리적 표시제는 이에 따라 존재하는 만큼 한국 정부가 에프티에이 합의를 잘 따라주기 바란다”며 표시제 준수를 압박했다.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는 유통법과 상생법도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발효로 위태로워졌다. 국회는 전통시장 ‘1㎞ 이내’에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관련 법을 통과시켰지만 한-유럽연합 협정은 유통시장을 유럽연합 쪽에 조건 없이 모두 개방하도록 하고 있다. 두 개의 법률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협정이 발효되면 유럽연합 쪽과 협상을 통해 충돌하는 한-유럽연합 협정문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을 표현한 것이다. 협정 발효 뒤에는 유럽연합이 합의하지 않는 한 협정문을 원천적으로 개정할 수 없다. 유럽연합의 헌법에 해당하는 ‘리스본 조약’에 따르면 유럽의회와 27개 회원국 의회의 동의까지 필요하다. 유럽연합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협정문 개정 약속을 정부가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유럽연합대표부는 “현재로서는 코멘트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지난해 8월에는 김 본부장에게 서한을 보내 “중요한 (유통) 시장을 닫아버리는 것은 명실공히 자유무역협정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친환경 학교급식도 논란거리다. 한-유럽연합 협정을 보면 학교급식용 음식 자재를 구입할 때 유럽연합은 유럽산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하게 돼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급식 프로그램의 증진을 위한 정부 조달에는 (협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둔 것과 견줘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이다. 정부는 별다른 대책 마련 없이 “유럽연합 쪽이 양해해줄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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