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임금 추이
18개월만에 마이너스로
올해 1분기 실질임금 증감률이 1년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를 임금이 따라잡지 못하면서 임금노동자의 급여소득이 사실상 줄어든 것이다. 실질임금 감소 폭도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크다. 고물가의 충격이 금융위기의 여파 이상으로 국민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5일 한국은행과 고용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월평균 실질임금은 236만5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46만5000원에 견줘 4.1% 감소했다. 명목임금은 0.2% 증가하는 데 그쳤고, 물가는 4.5% 뛰었기 때문이다.
실질임금은 명목임금에서 물가상승분을 고려한 것으로, 실질적인 구매력을 나타낸다. 이 지표가 마이너스라는 건 임금 인상폭이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해 실제로는 임금이 줄었다는 걸 뜻한다. 노동자들의 구매력은 실질임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는 경기회복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질임금 증가율은 금융위기의 충격파가 몰아닥친 2009년 1분기(-1.9%)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바 있다. 이후 2분기(-0.7%), 3분기(-0.47%)까지 감소세를 유지하다가 2009년 4분기 2.6%, 2010년 1분기 4.2%, 2분기 3.5%, 3분기 5.9%로 가파른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물가가 급등하면서 실질임금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 1.5%로 둔화됐고, 올해 들어 급락세로 돌아섰다.
1분기 노동자들의 명목임금 내역을 보면, 기본급과 통상 수당을 포함한 정액급여는 4.4% 늘었지만 연장 및 야간·휴일 근로수당과 상여금 및 성과급은 큰 폭으로 줄었다. 정규직의 경우 야간근로 등 초과근로시간이 줄었고, 대기업 등이 불확실한 경기전망 등을 이유로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개월째 4%를 넘어섰고,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하반기에도 공공요금 및 개인서비스요금 인상 등이 예고돼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될 전망이다.
이처럼 실질임금이 감소함에 따라 정부가 추진중인 서민생활 안정과 내수 활성화 정책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휴일을 늘리는 등 소비 여건을 개선한다 해도 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 감소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은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치 상승을 통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득 감소를 상쇄할 수 있지만 임금노동자와 저소득층은 별다른 대책이 없어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고통이 가중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임금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은 단기적 현상이 아니다”라며 “물가안정 기조도 필요하지만 중소기업의 임금을 높이고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강화해 구조적인 경제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