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수급조절·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충돌’
기업형슈퍼 제한법도 마찰…투자자 제소 가능
기업형슈퍼 제한법도 마찰…투자자 제소 가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화물차 총량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 등 정부 공공정책에 줄줄이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4대강 공사로 공급 과잉에 이른 굴삭기(굴착기)의 신규 등록을 제한하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정책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충돌한다며 포기한 바 있다.
정부가 수급조절 정책을 펼치는 또다른 품목은 운송용 화물차다. 화물차 운송업의 경우 1999년 등록제로 전환됐다가 공급 과잉(38만대)으로 치달아 출혈경쟁이 심해지자 정부가 2004년 화물차의 증차를 제한하는 ‘화물차 총량제’를 도입해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화물차 운송서비스를 원칙적으로 개방했다는 점이다. 건설기계 수급조절 정책에 대한 외교통상부의 유권해석을 그대로 화물차 총량제에 적용해보면, 우리 정부가 화물차 신규 등록을 허가하지 않아 미국 기업이 운송사업 진출에 실질적으로 제한을 받으면 우리 정부를 상대로 통상분쟁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화물차 총량제가 경쟁을 제한하는 불공정한 규제라고 비판해왔다.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중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및 품목 지정 제도’는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되살리는 내용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한국 시장 진출을 막는 ‘비관세장벽’이라 해석될 수 있다. 여야 의원 38명이 국회에 낸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법을 보면, 중소기업청장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하면 사전 승인이 없는 한 대기업은 해당 업종의 사업을 인수하거나 개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시장 개방과 투자자 보호를 약속한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충돌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만일 중소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국 기업의 적합업종 진출을 막으면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보장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국제관습법에 따른 대우’를 받을 권리(11.5조)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서비스 분야를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 ‘경제적 수요심사로 서비스 공급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협정 12.4조와 정면으로 배치하게 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세부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내용과의 연관성을 검토하기 어렵다”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과 충돌하는 기업형슈퍼마켓 규제법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도 마찰을 빚는다. 국회가 전통시장 ‘1㎞ 이내’에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관련 법을 통과시켰지만 한-유럽연합,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는 유통시장을 조건 없이 모두 개방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규제하는 이러한 공공정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도입한 투자자-국가제소제(ISD)로 무력화될 수 있다. 투자자-국가제소제는 투자자가 상대국의 정책·법률로 손해를 입었다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를 신청해 배상을 받는 것을 말한다. 통상법 전문가는 “투자자-국가제소를 맡은 중재부는 한국 법관이 아니라 미국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국외 법률가로 구성되고, 투자자가 중재부 구성에 50%의 영향력을 행사해 우리 정부의 정책과 국회의 입법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중재인 3명은 투자자와 우리 정부가 각 1명씩 뽑고, 두 중재인이 합의해 나머지 1명을 선정한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등에서 종결된 197건의 투자자-국가제소 사건 가운데 투자자가 승소하거나 합의해 상대국에서 보상받은 경우가 60%에 이른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중소상인 살리기 ‘뾰족수 찾기’ 손학규 민주당 대표(맨 오른쪽)가 11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중소상인보호를 위한 대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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