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장중 한때 1700선마저 무너졌던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단말기를 통해 등락을 거듭하는 주가와 환율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1801.35로 마감했다.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본격적인 침체의 전주곡인가, 지나친 불안감의 확산인가?
유럽과 미국의 부채위기로 촉발된 전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침체 단계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으로 가득 차 있다. 과연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위기의 실체는 무엇이며, 세계경제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경제 전문가들로부터 패닉에 빠진 금융시장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들어봤다. 김회승 류이근 기자 honesty@hani.co.kr
본격 ‘셀 코리아’ 아니다…금융위기 재연 가능성 낮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이벤트성 사건 하나 때문에 전세계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4월부터 선진국 경기는 나빠졌고 기업들의 실적 또한 부진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이를 애써 외면해왔다. 이런 펀더멘털에 대한 불안감이 미국의 부실한 부채협상과 뒤이은 신용등급 강등과 맞물리면서 거대한 공포감으로 시장에서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매도세는 조만간 가라앉을 것으로 본다. 아직까지 이른바 ‘셀 코리아’는 아니다. 변동성이 크고 유동화에 유리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늘 취해오던 투자 패턴으로 본다. 증시는 폭락했지만 국채의 매수세와 가격은 견고하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원-달러 환율은 당장은 급등하고 있지만 그 폭이 크진 않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달러화 약세에 따라 다시 절상 쪽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로선 2008년 금융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당시는 전세계적인 신용위기였다. 초대형 금융기관들이 무너지며 자금시장이 급속히 경색됐다. 이번 위기는 금융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경제만 놓고 보면 지금의 금융불안이 실물경제의 침체로까지 이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2008년 이후 실물 부문이 상당히 회복된 상태다. 다른 나라에 견줘 버텨나갈 체력을 비축한 측면이 있다. 불안이 어느정도 진정된다면 큰 타격은 없을 것이다. 이 경우 경제 성장률 역시 4% 밑으로 떨어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
글로벌 증시의 급락세는 이번주 중 진정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급반등할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증시를 둘러싼 대외 변수들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위기 때는 주요국 간 공조, 또는 개별국이 적극적인 유동성 확대로 위기를 봉합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을 풀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뾰족한 정책적 대응 수단이 없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 등 앞으로 취해질 대응 조처는 고육책에 불과하며 약효 또한 불확실하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기는 이른 시간 안에 개선될 수 없다. 재정 긴축이 불가피하다. 세계경제가 침체 수준은 아니지만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본다.
문제는 자금시장 경색…세계경제 재침체에 빠질수도
세계 경제가 재침체로 갈 가능성이 높다. 자금시장이 심각한 신용경색으로 갈 확률이 적지 않다. 미국과 유럽 내 은행간 대출 등 단기자금의 금리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오르는 등 돈줄이 죄이는 흐름들이 엿보인다. 돈이 안 돌면 소비는 위축되고, 기업들은 투자를 꺼린다.
이번 위기의 원인이었던 국가 부채 문제를 너무 간과해왔다. 2008년 민간부문의 부실로 터진 문제는 정부가 막아줬다. 그런데 정부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막아줄 것인가? 그것도 여러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미 국채는 신용의 정점인데 이게 역사상 처음으로 붕괴되면서 패닉이 발생했다.
미국에서 센 대책이 나와야 금융시장이 진정될 것으로 보지만, 웬만해서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본다. 2008년의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금시장의 안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은 안전한 미국 쪽으로 돈이 가고 있다. 각국 정부도 미 국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속으론 딴 생각을 할 것이다. 서서히 소리소문 없이 미 국채의 비중을 줄이고 채권을 다변화하려고 움직일 것이다. 괜찮아졌다 싶을 때 되레 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다. 달러가 최고의 안전자산이자 기축통화로서 누려온 패권적 지위를 잃으면서 국제 금융시장에 혼란이 초래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마땅히 달러를 대체할 수단도 없다. 위안화 결제가 늘어나고, 유로·엔·프랑 등 통화바스켓의 역할도 커질 수 있겠지만 달러를 대체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군다나 유럽은 재정위기에 빠져 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마저 흔들리면 유럽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국채를 쥔 은행들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의 위기가 우리한테는 양면적이다. 사태가 천천히 전개되면 글로벌 자금 수요의 다변화와 신흥국 위주의 경제 회복시 수출 등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급박하게 진행되면 안전자산으로 글로벌 자금이 크게 쏠리면서 잘못하면 경제가 박살날 수 있다. 현재로선 경제 성장률 목표치 달성도 어려워 보인다.
세계경제의 리더십이 불신받는 상황…불확실성 커져
악재가 생각보다 크다. 2008년 위기가 시장에 대한 신뢰 상실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지금의 위기는 정책 당국에 대한 신뢰 상실로 촉발됐다. 각국 정부가 재정적자 이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다만 위기의 강도가 2008년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비롯된 2008년 위기 때엔 금융부문의 부실이 너무 컸다.
지금의 위기가 경기 재침체로 이어지지 않겠지만, 정부 쪽 대응 여부에 따라선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 쪽 리더십과 각국 정부 간 공조가 중요하다. 당장 세계 경제의 리더십이 크게 불신받는 만큼 불확실성은 2008년만큼 크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외부 변수와 충격이 우리 거시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주가와 환율 등 금융시장의 불안이 수출과 물가, 소비, 투자 등 실물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선진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결국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물가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소비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가계 소득인데, 4%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물가에 견줘 실질소득은 늘어날 기미가 없다. 이 때문에 소비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도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로 올해 경제성장률 4.5% 달성이 어려워 보인다.
환율이 상승하면서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수출은 환율보다 세계경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환율이 급등해 수출로 이득을 보는 것보다, 세계경제가 어려워져 수요가 줄어들면서 입게 될 손실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되레 환율이 오르면 지금도 높은 수준인 물가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거시경제가 어렵게 되면 기준 금리를 올리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 과잉 유동성 상태는 더 지속된다. 이는 물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외환위기가 재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나 외채 수준이 2008년보다 나은 상황이다.
양적 완화, 선순환 이뤄지지 못해…장기불황 겪을수도
최근의 금융시장 패닉이 소비·투자심리 냉각으로 확산되면 실물경제로 위기가 전이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 1987년 증시가 대폭락할 때 누구나 알고 있던 뉴스에 시장이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이번에도 투자자들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긴축하면 경제가 더 나빠지는 것 아닌가’라는 상식적인 판단에 누군가 먼저 (주식을) 던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시장 전체가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투매를 지나 손절매까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경제에 나선형 불황이 생길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은 돈의 힘으로 증시를 떠받쳐왔다. 특히 미국은 기업이익을 최대화함으로써 실물경제를 부양하려 총력전을 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 대비 미국 기업들의 이익 규모는 6~7%로 역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00년대 초 정보기술 거품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고용과 실질소득이 증가하는 등 이른바 낙수효과(트리클다운)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기업들 역시 강력한 경기회복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고용과 투자보다는 이익 챙기기에 전념한 탓이다. 양적완화가 선순환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세계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을 겪을 수도 있다.
금융불안이 기업과 가계의 투자 및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최대한의 정책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양적완화 정책은 물가부담 없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시장이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라면 무엇이든 행동으로 신뢰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환율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행히 외환위기 이후 외화 유동성은 잘 관리된 측면이 있다. 지금 시장은 신뢰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각국의 공조가 힘들 것이란 전망이 있지만, 공멸의 위기감으로 치닫기 전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줘야 한다.
패닉이 진정되더라도 상당 기간 세계경제의 불안한 흐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실물경제와 외화 건전성이 견조한 편이다. 금융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아 투자처를 차별화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경제가 최악의 희생양으로 내몰리진 않을 것이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글로벌 증시의 급락세는 이번주 중 진정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급반등할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증시를 둘러싼 대외 변수들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위기 때는 주요국 간 공조, 또는 개별국이 적극적인 유동성 확대로 위기를 봉합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을 풀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뾰족한 정책적 대응 수단이 없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 등 앞으로 취해질 대응 조처는 고육책에 불과하며 약효 또한 불확실하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기는 이른 시간 안에 개선될 수 없다. 재정 긴축이 불가피하다. 세계경제가 침체 수준은 아니지만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본다.
문제는 자금시장 경색…세계경제 재침체에 빠질수도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
세계경제의 리더십이 불신받는 상황…불확실성 커져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
양적 완화, 선순환 이뤄지지 못해…장기불황 겪을수도
홍춘욱
국민은행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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