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토종 OS 개발’ 방침에 업계 시큰둥 왜?
정부 주도 SW 개발 프로젝트 추진 사례
정부 주도 SW 개발 프로젝트 추진 사례
‘개발만 하면 뭐하나. 아무도 쓰지 않을 텐데….’
최근 정부가 삼성전자·엘지(LG)전자·팬택 등 국내 업체들과 공동으로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아이오에스’(iOS)에 맞서는 토종 모바일 운영체제(OS)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관련 업계에선 시큰둥한 반응이 지배적이다. 과거 경험에 비춰 볼 때 개발 작업에 참여한 업체들조차 이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아냥은 물론이고, 업계 현실과 산업 환경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졸속 처방이란 비판도 거세다.
정부 주도의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가 중간에 흐지부지된 사례는 수두룩하다. 이른바 ‘케이-도스’(K-DOS)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흔히 ‘286 컴퓨터’라 불리던 ‘80286’ 피시(PC)가 보급되던 1990년대 초,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 종속된 소프트웨어 ‘독립’을 외치며 피시 제조업체들과 함께 한국컴퓨터연구조합을 세워 국산 피시 운영체제 개발에 나섰고, 마침내 1991년 ‘케이-도스’를 내놓았다. 하지만 ‘G7 프로젝트’의 하나로 적잖은 인력과 예산을 들여 개발한 케이-도스는 제대로 사용조차 해보지 못한 채 ‘찬밥’ 취급을 당하다가, 결국 윈도 운영체제의 등장과 함께 폐기됐다.
당시 삼성과 엘지 등 국내 피시 제조업체들마저 케이-도스를 외면했다. 이들 업체는 케이-도스 개발에 참여하고도 엠에스의 ‘엠에스-도스’를 장착했다. 겉으로는 케이-도스의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지만, 실제로는 엠에스-도스만 장착하라는 엠에스의 일방적인 계약 조건에 발목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복지부동도 한몫했다. 공중전화 낙전수입으로 전국 초·중·고에 공급되는 ‘교육용 컴퓨터’에 케이-도스를 먼저 깔아 안정성을 검증받자는 대안이 등장하자, 이번엔 교육부가 제동을 걸었다. “운영체제로 엠에스-도스를 깐 컴퓨터에서 장애가 생기면 문제되지 않는다. 엠에스-도스가 저 정도이면 다른 것은 오죽할까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케이-도스를 깔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한다. 엠에스-도스를 깔지 왜 케이-도스로 바꿔 사고를 치느냐며 책임을 묻는다.” 당시 교육용 컴퓨터 보급 일을 맡고 있던 교육부의 한 장학사가 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이런 경험은 이후에도 되풀이됐다. ‘한국형 리눅스’, ‘한국형 모바일 플랫폼(위피)’, ‘한국형 라우터’ 등도 그 예이다. 한결같이 정부 프로젝트로 개발됐으나 관련 업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애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추진되는 토종 모바일 운영체제 개발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안드로이드와 아이오에스 사례에서 보듯, 모바일 운영체제는 소프트웨어 자체보다는 관련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이미 ‘바다’라는 독자 운영체제를 갖고 있다. 정부의 발표를 바라보는 업체의 반응이 냉랭한 이유다.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내세운 명분을 대놓고 거부하긴 어려워 거들긴 하겠지만 솔직히 내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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