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기준 총족 못할 경우
관세혜택 못받고 부담 커져
의류 중 56%만 기준 넘어
관세혜택 못받고 부담 커져
의류 중 56%만 기준 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더라도, 우리나라 수출품이 원산지(한국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엔 미국 정부에 물어야 할 물품취급 수수료가 57%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원산지 인정을 받지 못하는 데 따른 관세 부담에 더해 수수료마저 늘어나는 것이다.
23일 미국 상·하원에서 비공식 심사를 마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과 ‘무역조정지원’(TAA) 제도 연장 법안을 보면, 미국 정부는 원산지로 인정받지 못한 공산품에 대해 현행 물품수입액의 0.21%인 물품취급 수수료를 0.329%로 올리도록 돼 있다. 원산지 인정을 받은 수출품은 관세와 함께 수수료가 폐지되지만, 그러지 못하면 관세(평균 3.5%)뿐 아니라 수수료까지 57% 더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품취급 수수료란 수입품이 미국 관세법과 무역법을 준수한 것인지를 심사하는 명목으로 미국이 징수하는 비관세 행정 수수료다. 에프티에이 피해지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에 수수료를 대폭 인상한 것이다.
문제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원산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탓에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가 대표적인 수혜업종으로 꼽은 섬유·의류의 경우, 한국산 제품임을 인정받으려면 원칙상 한국산이나 미국산 원사로 직물을 짜고, 우리나라에서 의류를 재단·봉제해야 한다. 다른 분야에서는 제3국의 원자재가 일정 비율을 넘지 않으면 원산지로 인정하는 것과는 달리, 한-미 에프티에이는 섬유 분야에서 원사 공급이 부족한 극히 일부 품목을 빼고는 모두 엄격한 ‘원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관세청은 국내 섬유업체 가운데 한-미 에프티에이의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는 최대 56%에 그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체결한 에프티에이에서도 국내 공산품이 원산지 기준을 충족한 비중은 높지 않다. 한-아세안 에프티에이가 29%, 한-인도 에프티에이가 17.7%에 그쳤고 한-칠레 에프티에이만이 85.5%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물품취급 수수료를 57%나 한꺼번에 올리는 것은 미국의 보호주의 비관세 장벽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 의회 예산국(CBO)은 한-미 에프티에이가 발효되면 원산지 기준을 충족한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폐지돼 2011년부터 2016년까지 20억8500만달러의 관세 수입이 줄어들지만,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수입품에 대한 물품취급 수수료가 대폭 인상된 덕에 21억6700만달러의 새로운 비관세 수입이 생겨날 것으로 추정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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