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특허등록 소리·냄새 186건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배급사인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MGM)의 영화에 늘 나오는 사자 울음소리, 컴퓨터를 켤 때마다 들리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 시작음, 펩시콜라사의 병 따는 소리…. 하나같이 미국에서는 함부로 쓰지 못하는 소리다. 미국 특허청에 등록돼 보호받는 엄연한 ‘상표’이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미국의 이러한 상표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보호를 받게 된다. 두 나라가 협정문에서 소리와 냄새를 시각과 마찬가지로 등록 가능한 상표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미국 특허청 상표심사 매뉴얼에 따라 1950년부터 소리 상표, 1990년부터 냄새 상표가 출원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엔비시(NBC)방송사의 3중 화음 차임벨소리, 자유의 종소리, 야후 광고의 ‘야후’ 소리, 레이저 프린터 토너의 레몬향, 자수용 실의 꽃향기 등이다. 특허청이 박주선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4일 현재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소리 상표는 172건, 냄새 상표는 14건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리·냄새 상표를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고 있다. 현행 상표법이 상표를 ‘시각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표장’으로 한정해 비시각적인 상표 출원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미 에프티에이가 발효되더라도 미국이 보호할 우리나라의 소리·냄새 상표는 없다는 얘기다. 소리·냄새 상표 등록을 가능하게 하는 상표법 개정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률안으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상표법 개정안이 통과돼 소리·냄새가 상표로 인정받게 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무엇보다 상표로 등록할 만한 소리나 냄새가 개발돼 있지 않다. 또 후각이나 청각은 주관적이라 상표 분쟁에 대비한 심사 기준을 정립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미국에서도 독특한 오토바이 엔진 소리로 유명한 할리데이비드슨이 소리 상표 등록을 6년 동안 시도했지만 혼다와 스즈키의 반발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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