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원장, 백화점 등 11개업체 CEO들 만나 합의
인하폭·대상기업 결정 유통업체에 맡겨 실효성 의문
인하폭·대상기업 결정 유통업체에 맡겨 실효성 의문
대형 유통업체들이 정부의 ‘공생발전’ 압박에 떠밀려, 중소입점·납품업체들한테 받던 30% 안팎의 판매수수료율을 3~7%포인트씩 낮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부터 입점·납품 업체들의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수료 인하폭과 인하 대상 기업에 대한 결정이 개별 유통업체에 맡겨진 상태여서 실효성이 있을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6일 오전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백화점, 대형마트, 티브이(TV)홈쇼핑 등 11개 대형유통업체 대표이사를 서울 을지로 은행회관 16층으로 불러 모았다. 지난 2월에 이은 두번째 간담회 자리였다. 대표이사들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공정위가 지난 6월 대형유통업체의 판매수수료율을 조사해 공개하고, 판매수수료 인하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온 탓이다.
김 위원장은 “유통업계가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며 “유통산업 성장의 과실이 대형 유통업체에 편중되면서 중소 유통·납품 업체의 생존기반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유통업체들의 ‘볼멘소리’를 미리부터 차단한 셈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내민 판매수수료율 5~7%포인트 인하안에 대해 홈쇼핑업체들이 반발하는 등 합의안 도출에는 ‘진통’을 겪었다. 결국 애초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만에 간담회가 끝났고, 공정위와 업계는 3~7%포인트 선에서 절충안을 마련했다.
이날 유통업체가 약속한 ‘동반성장을 위한 합의’에는 신규 중소납품업체와의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고, 내년 신규계약부터는 합리적인 거래조건을 담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또 2012년을 중소 납품업체에 상품권 구입을 강제하거나 판촉비용을 부당하게 떠넘기는 등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뿌리뽑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공정위는 “판매수수료를 하향 안정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합의안에 서명한 유통업체들이 얼마나 성실히 약속을 지킬지는 의문이다. 당장 업체들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대형백화점 고위 간부는 “정부의 유통업체 수수료 조정 개입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도 “달랑 (3~7%p란) 숫자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인하안을 마련하려면 산 넘어 산”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 등은 판매수수료 인하에 따라 전체 영업이익의 3~5%가량인 200억~400억 안팎의 수익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공정위는 일단 ‘자율개선’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유통업체들을 계속 ‘채찍질’한다는 방침이다. 지철호 기업협력국장은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기준에 수수료 평가항목을 신설하고, 중소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수수료 부담 실태에 대한 정밀분석과 집중 모니터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들이 판촉비용을 또 다른 방식으로 중소 납품업체 등에 강제할 가능성도 있다. 한 제화업체 사장은 “매장 인테리어 비용 등 추가비용 때문에 새로 개점하는 백화점엔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라며 “판매수수료와 판촉비용 등을 제하면 중소업체들의 순이익은 많아야 판매대금의 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황예랑 김은형 조기원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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