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협정’ 남은 쟁점은
미국 의회가 12일(현지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우리 국회가 비준 절차를 마무리하려면 철저한 검증과 보완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협정 내용을 두고 미국 쪽에 유리한 ‘불평등한 협정’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데다, 쇠고기·쌀 시장 개방 등 민감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협정의 국내법적 지위가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서로 다르다는 점은 여전히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미국 의회가 처리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에는 ‘한-미 협정과 충돌할 때 미국법이 우선하며, 한국인은 한-미 협정을 위반했다고 해서 미국에서 소송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한-미 협정이 국내법과 동등한 지위를 지닌다. 이찬열 의원(민주당)이 미국 이행법과 동일한 내용을 담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외교부는 “이 법안은 위헌적 요소가 많고 국제법을 위반해 폐기돼야 한다”고 반대하고 있다.
또 정부 공공정책에 줄줄이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 추진중인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법’은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되살리는 내용이지만, 외교부는 “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과 충돌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도 마찰을 빚는다. 국회가 전통시장 ‘1㎞ 이내’에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관련 법을 통과시켰지만 한-미 협정에서는 유통시장을 조건 없이 모두 개방했기 때문이다.
4대강 공사로 공급 과잉에 이른 굴삭기(굴착기)의 신규 등록을 제한하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는 이미 한-미 협정과 충돌한다며 정부가 포기했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정책도 한-미 협정 발효 뒤에는 정부가 맘대로 철회할 수 없게 된다.
공공정책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은 투자자-국가제소제(ISD)이다. 투자자-국가제소제는 투자자가 상대국의 정책·법률로 손해를 입었다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를 신청해 배상을 받는 것을 말한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집행위원장을 미국이 선출하는데다 중재인으로 활동하는 법률가도 미국인 137명, 한국인 8명으로 불균형을 이룬다.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통상절차법이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헌법은 주요 조약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통상절차를 규정한 법안이 없는 상태다. 이러다 보니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조약을 체결할 때도 통상관료가 외부 견제 없이 협상하고 일방적으로 결과만 국회에 통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밖에 정부가 한-미 협정과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쇠고기와 쌀 시장 전면 개방도 꺼지지 않은 불씨다. 외교부는 한-미 협정이 발효된 뒤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재개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의 쌀 관세화 유예가 끝나는 2014년에 쌀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사실상 공식화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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