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소송제’ 우려 이유
② 다국적 기업이 ‘상대국 정부 길들이기’ 활용
③ ‘공적 신분’ 아닌 중재인 3명이 단심제 결정
④ 동일한 사건도 결론은 제각각…일관성 없어
② 다국적 기업이 ‘상대국 정부 길들이기’ 활용
③ ‘공적 신분’ 아닌 중재인 3명이 단심제 결정
④ 동일한 사건도 결론은 제각각…일관성 없어
“미국 사법권을 국제분쟁처리기관에 위임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다.”(1997년, 미국의 첫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국제법 저널> 기고문)
“시민의 복지와 환경을 보호하는 주정부의 권한에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다.”(2002년, 미국 주 검찰총장 회의 결의안)
“미국 시민과 기업에는 허용되지 않는 ‘판결에 대한 도전’을 외국 투자자에게는 인정한다.”(2004년 미국 주 대법원장 회의 결의안)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발효 뒤 공공정책과 사법부 판결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대상임이 명백해지자 미국 법률가들은 이런 우려를 쏟아냈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한창 진행될 때 우리 대법원과 법무부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사법주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고, 법무부는 “우리 헌법상 보장한 재산권 과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대안을 모색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로 법률가들은 주권을 제한한다는 점을 꼽는다. 국내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한 정책인데도 중재에 회부되면 정부가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다국적 기업의 경우 제도적·관행적 장벽을 없애고 상대국 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승소 가능성이 낮은데도 중재를 신청하는 경향이 있다고 법무부는 지적했다. 또 외국 투자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라 실질적으로 국내 투자자가 ‘역차별’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나라의 공공정책을 중재로 결정한다는 데도 거부감을 나타낸다. 중재는 전통적으로 상업적 거래관계, 특히 계약관계를 다루는 사적분쟁의 해결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재판정부를 구성하는 중재인 3명은 법관과 같은 ‘공적 신분’이 아니며, 다국적 기업의 변호사로 일하다가도 그 기업이 당사자인 중재심판의 중재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동일한 사건을 놓고 여러 명의 외국 투자자가 각각 다른 중재절차를 밟을 수 있는데, 그때 결론이 엇갈린다. 예컨대 미국 자본가인 라우더가 방송국 소유·운영권을 놓고 체코 정부를 상대로 영국 런던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중재 절차를 따로 밟았지만 2001년 열흘 사이로 내려진 결론이 달랐다. 2001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경제위기 때 내린 외환시장 통제 조처에 대해 외국 투자자들이 40여건의 중재를 무더기로 신청했는데 동일한 조처를 두고도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단심제라서 중재 판정이 내려지면 그대로 확정된다. 우리 정부가 패소하면 미국 투자자에게 손해배상금과 이자를 지급하거나, 그의 재산을 원상회복해야 한다. 다만 정부의 조처를 취소·변경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판정은 나올 수 없다. 현재까지 최대청구액은 에너지회사 주주들이 러시아를 상대로 제기한 약 330억달러로 알려져 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중재 판정에 따르지 않더라도 미국 정부가 특혜관세를 정지하는 ‘무역보복’으로 손해배상금을 받아갈 수 있다.
승소하더라도 고액의 중재·법률 비용 등을 국가예산으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건당 법률 비용은 100만~200만달러로 추산된다. 미국 기업 포프앤탤벗이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낸 중재청구에서, 손해배상금은 46만달러가 나왔지만, 사건이 4년간이나 진행된 탓에 법률비용만 760만달러가 들었다. 외교통상부는 내년 한-미 협정 이행 예산에 중재위원 용역비로 15만달러(1건)를 책정해뒀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승소하더라도 고액의 중재·법률 비용 등을 국가예산으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건당 법률 비용은 100만~200만달러로 추산된다. 미국 기업 포프앤탤벗이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낸 중재청구에서, 손해배상금은 46만달러가 나왔지만, 사건이 4년간이나 진행된 탓에 법률비용만 760만달러가 들었다. 외교통상부는 내년 한-미 협정 이행 예산에 중재위원 용역비로 15만달러(1건)를 책정해뒀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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