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대기업계열 20곳 조사
중간 단계 앉아서 이익 챙겨
내부거래 매출 88% 수의계약
“부당지원 증거안돼 제재 못해”
중간 단계 앉아서 이익 챙겨
내부거래 매출 88% 수의계약
“부당지원 증거안돼 제재 못해”
대기업 광고업체인 ㄱ사는 계열사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계약을 공개입찰 없이 따냈다. 계약금액은 3억1000만원. 그런데 ㄱ사는 이 사업을 통째로 중소기업 ㄴ사에 2억7000만원에 위탁했다. ㄱ사는 단순히 거래 중간에 끼는 것만으로도 앉은 자리에서 4000만원을 ‘통행세’로 챙긴 셈이다.
대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특정 계열사에 부당이익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계열사인 광고·시스템통합(SI)·물류업체 20곳을 조사한 결과, ㄱ사와 같은 사례가 상당수 발견됐다고 9일 밝혔다. 신영선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중소기업한테 직접 발주할 수 있는데도, 계열사를 중간에 끼워넣는 식으로 단순히 거래단계만 추가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이번에 조사한 기업은 삼성그룹(제일기획·삼성에스디에스·삼성로지텍), 현대자동차그룹(이노션·현대오토에버·현대글로비스), 엘지그룹(에이치에스애드·엘지씨엔에스·하이비지니스로지스틱스), 에스케이(에스케이마케팅앤컴퍼니·에스케이씨앤씨) 등 20곳이다. 공정위는 총수일가 지분과 영업이익률 등을 따져 조사대상을 뽑아냈다. 공정위가 지난 6월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직권조사한 뒤 연말까지 계열사 부당지원행위(공정거래법 위반)를 제재할 계획이라는 점에 비춰, 이 20개사가 ‘요주의’ 기업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개입찰 없이 임의로 사업장을 정하는 수의계약도 만연해 있었다. 지난해 20개사가 계열사와 내부거래한 매출액(9조1620억원) 가운데 수의계약 비중은 88%(8조846억원)나 됐다. 열에 아홉은 어느 업체가 사업을 맡기기에 적당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삼성’, ‘현대차’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계열사를 밀어줬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20개사가 비계열사와 거래할 때의 수의계약 비중은 절반 수준인 41%에 그쳤다. 공정위는 “대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역량 있는 비계열사의 성장 기회까지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물류 분야의 수의계약 비중은 99%, 광고 분야는 96%에 이르렀다. 또 정부가 ‘공정사회’ 화두를 꺼내든 지난해 20개사의 매출액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은 71%로, 2008년 69%, 2009년 67%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공정위는 기업들 스스로 이같은 수의계약 관행을 바로잡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수의계약이나 통행세를 부당지원행위의 직접적인 증거라고 볼 수 없어 이것만으로 제재하긴 어렵다”며 “경쟁입찰 확대 등 자율개선방안을 4대 그룹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9월 4대 그룹한테 ‘1억원 이상 계약 땐 반드시 경쟁입찰 실시’ 등의 내용을 담은 모범거래관행 기준을 제시하고 ‘자율선언’을 해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공정위는 경쟁입찰, 수의계약 여부 등을 공시하도록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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