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첫 쇳물 터지던 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가운데)이 1973년 6월9일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고로인 포항제철 제1고로에서 쇳물이 터져 나온 뒤 임직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박 회장은 당시 표정이 굳어 있는 이유를 두고 “정말 기뻤지만, 마음 한구석엔 이 쇳물로 과연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을지 걱정됐다”고 훗날 술회한 바 있다. 포스코 제공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별세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5시20분께 급성 폐손상으로 별세했다. 향년 84.
박 명예회장은 지난달 11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흉막전폐 절제술을 받은 뒤, 지난 5일부터 급성 폐손상이 발생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 숨을 거뒀다. 흉막전폐 절제술은 심장, 폐 등을 둘러싸고 있는 흉막과 섬유화가 진행된 한쪽 폐를 잘라내는 수술이다. 박 명예회장은 10년 전 흉막섬유종이 발견돼 미국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최근 몇 달 새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명예회장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 쪽은 박 명예회장이 “세계 최강의 포스코가 돼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박 명예회장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산업을 일궈내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초를 닦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6기로,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거쳐 1968년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설립했다. 이어 ‘제철보국’을 내걸고 1973년 6월 종합제철 일관공정을 완공시켰고, 1992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연산 2100만t의 생산능력을 가진 세계적인 제철소로 키웠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는 영욕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에 경제분과위원장으로 참여한 데 이어 1981년 11대 전국구 의원(민정당)으로 정계에도 입문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악연’으로 일본 망명 길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 9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 ‘디제이피연합’을 결성한 뒤 자유민주연합 총재에 올랐으며,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박태우 박현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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